주거빈곤 아동 129만 명
주거환경 때문에 남성보다 관리비 더 내

 

국회가 지난해 12월 재건축 규제 완화를 담은 부동산 3법을 처리하면서 강남권 아파트들이 수혜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서울 개포주공1단지.
국회가 지난해 12월 재건축 규제 완화를 담은 '부동산 3법'을 처리하면서 강남권 아파트들이 수혜자로 떠올랐다. 사진은 서울 개포주공1단지. ⓒ뉴시스·여성신문

연초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가 ‘집’ 문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60%가 ‘남의 집’에 살고 있다고 하니 일부만의 고민이 아니다. 연초만 되면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고, 막상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도 쉽사리 집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더욱이 여성들이나 아이들은 주거 환경에 있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껏 발표한 부동산 정책을 보면 이들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줄곧 부동산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방침으로 매매 활성화에만 올인하고 있다. 거래세·보유세 등 세제 완화, 다주택자 규제 완화, 임대업 지원, 재건축 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 철폐, 재건축 초과이득세 철폐 등 내놓은 정책들의 주요 수혜자는 건설업계나 다주택 보유자들이다.

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놓은 ‘행복주택 20만 호’는 이미 목표치가 14만 호로 대폭 수정됐다. 초기자본이 없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을 위해 도심에 짓겠다고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이유로 도심과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선정하는 등 정책 목적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주택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로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장과 달리 임대 중심에서 매매 중심으로 역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한 토론회에서 조명래 단국대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80~2010년 사이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61%에서 97%로 36%p 증가했지만 자가 보유율은 37%에서 41.1%로 4.1%p로 소폭 증가했다. 조 교수는 “지난 6년 동안 정부는 한결같이 ‘죽은 고목에 꽃피우는 식’ 매매거래 활성화에만 올인했다”고 비판했다. 시장 거래 형태가 바뀌었는데도 계속 매매만 강조하는 데 대한 쓴소리다.

특히 주택 문제는 성별로도 체감이 다르다. 도심에서 집을 구하는 남성들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주거 선택 폭이 비교적 넓지만 여성들은 치안과 안전성을 중시해 선택 폭이 좁다는 것이다. 청년주거복지 시민단체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리비 지출에 있어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월등히 높았고, 주택협동조합이나 공유주택에 대한 관심도 여성들이 더 컸다. 여성들이 비교적 치안이 보장된 주택을 임대했을 경우 주인의 관리비나 보증금 인상 요구를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아이들의 주거 환경도 중요하다. 지난 2013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거빈곤 가정의 아동은 129만 명 정도다. 주택법이 정한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한 가정의 아이들로 지하·옥탑·비닐하우스·고시원 등 비주택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지하에 거주하는 아동은 23만 명으로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아동 사고의 절반가량이 집안과 집 근처에서 일어난다며, 최소한의 주거 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김은정 소장은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아동의 부모 세대인 30~40대의 자가 점유율이 하락하고 월세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주거 안전성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서연 민달팽이 유니온 주거상담팀장은 “관리비 조사 시 알았는데 집주인에게 부당하리 만큼 과다하게 관리비를 내는 경우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많았다”며 “집주인과의 임대차 관계에서도 성별권력이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29일 ‘부동산3법’을 통과시켰다. 이 역시 매매거래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다.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폐지법, 분양가상한제 탄력 운영(주택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으로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반대 토론을 통해 “서민들에게 빚을 내 집을 사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여야가 합의한 서민주거안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전월세상한제도, 계약갱신청구권, 주택바우처제도 등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정부·여당의 난색으로 특위 활동에 대한 전망은 썩 밝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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