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김광석 노래 부르기 2015’ 경연대회 현장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생전에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한 곳이다. 마당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학전 제공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생전에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한 곳이다. 마당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학전 제공

지금처럼 찬 겨울날이었다. 그는 덧없이 떠났다. ‘영원한 가객(歌客)’ 고 김광석(1964~1996)이 우리 곁에 머물렀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았다. 돌아온 '김광석의 계절'을 맞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올해도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6일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19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저녁 8시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 객석은 고인을 추억하는 이들로 가득 찼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생전에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한 곳이자, 2012년부터 매년 1월 6일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김광석의 팬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는 일종의 경연대회다. 김광석 추모사업회가 주최하며, 올해부터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김광석 따라 부르기’에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로 명칭을 바꿨다.

이날 무대엔 지난달 온라인 심사를 통과한 참가자 13팀이 올랐다. 심사는 가수 박학기, 포크 그룹 ‘자전거 탄 풍경’의 멤버 강인봉, 여성 싱어송라이터 겸 교수 권진원, 그룹 ‘동물원’, 김광석의 명곡 ‘서른 즈음에’를 작사 작곡한 강승원 등이 맡았다. 

올해는 10~30대 젊은 층의 참여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김광석의 음악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는 평이다. 참가자들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대부분이 음악을 전공했거나 현재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온 20대 남성 2인조 '한계'를 포함해 ‘곱창’, ‘일곱시쯤’, ‘호소’, ‘파스톤’ 등 개성있는 밴드들도 무대에 올랐다. 풍부한 선율과 경쾌한 리듬에 객석에선 절로 박수가 터졌다. 심사위원들도 “예년보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은 무대였다”며 찬사를 보냈다. 

'고수들’만의 무대는 아니었다. 노래를 마치고도 긴장을 풀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웃음을 선사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안타까운 '음이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만은 순위를 가릴 수 없었다. 18세 소녀 김경민 양은 키보드를 연주하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불렀다. 그는 “엄마가 김광석을 좋아해서 덩달아 그의 노래를 많이 듣고 부르다가 이 자리까지 왔다”며 쑥스러워했다. 다른 참가자 김상연 씨도 직접 기타를 치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열창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하면 어설픈 실력이었으나, 뒤지지 않는 열정에 청중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이날 대상 수상자 정미현 씨가 김광석의 내 사람이여를 부르고 있다.
이날 대상 수상자 정미현 씨가 김광석의 '내 사람이여'를 부르고 있다. ⓒ학전 제공

영예의 대상은 ‘내 사람이여’를 부른 20대 여학생 정미현 씨에게 돌아갔다. 그는 가녀린 외모와 달리 짙은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시상대에 오른 정씨는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수상자 공연에 쓸)악보를 두고 왔다"며 수줍어했다. 강인봉의 즉석 기타 반주에 맞춰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그럴 수 있다면...” 애절함과 희망이 어린 노랫가락에 몇몇 관객들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따라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축하 무대엔 강승원과 동물원이 올랐다. 이들은 ‘서른 즈음에', ‘변해가네’ 등 고인의 곡과 자신들의 인기곡을 함께 연주했다. 세월이 무색한 열정적인 무대 매너에 객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장식했다.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권진원은 "심사보다는 같이 즐기는 자리였다. 고인 덕에 매년 이런 따뜻한 만남을 가질 수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박학기도 "이 대회가 ‘김광석’을 넘어 또 하나의 잔치가 되고, 많은 이들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광석 노래부르기 2015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
'김광석 노래부르기 2015'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 ⓒ학전 제공

이날 경연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공연장 바깥으로 나온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며 소극장 앞을 맴돌았다. 여운이 쉽사리 가시질 않는 듯했다. 김용국․정은주(43․파주)부부는 “새롭고 즐거운 무대”라며 입을 모았다. 이현민(33․서울) 씨는 “김광석의 노래엔 변치 않는 멋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김광석의 노래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화려한 비주얼도, 금세 귀에 익는 가락이나 가사도 없다. 평범한 우리네 삶과 사랑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의 음악이 오래도록 변함없이 사랑받는 비결이다. "김광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이거 내 얘기네’ 하며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그렇게 많이 남긴 가수는 또 없잖아요." 한 20대 관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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