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경비원 자살’ ‘갑을 논란’… 모멸감 키워드로 본 한국인의 마음 풍경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2일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멸감을 느낀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을 느낀다”며 “모멸감은 정서적 원자폭탄”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2일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멸감을 느낀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 가해자를 향한 복수심을 느낀다”며 “모멸감은 정서적 원자폭탄”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랜만에 상을 받으니 얼떨떨하던데요.”

인문사회과학서 『모멸감』으로 최근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부문상을 받은 김찬호(53)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수상 소감을 묻자 다소 겸연쩍어했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는 늘 그렇듯 자유롭고 경쾌한 분위기였다. 하자센터 부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가 건넨 명함을 보니 ‘김찬호 알로하’라 새겨 있다. “하와이에서 쓰는 인사말이에요. ‘헬로’와 같은 뜻인데 이곳에서 쓰는 닉네임이죠.”

『돈의 인문학』『도시는 미디어다』 등 다양한 저작을 내고 강연 활동도 해온 김 교수는 요즘 언론이 가장 많이 찾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땅콩 회항’ ‘경비원 자살’ ‘군 자살’ 같은 핫이슈를 관통하는 모멸감이란 키워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을 일찌감치 내놨기 때문이다.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다보면 ‘맞아, 맞아’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우리의 마음 풍경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모멸감』을 읽고 작곡한 현악사중주 10곡도 이채로웠다.

그의 렌즈에 포착된 모멸감은 수치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수치심은 혼자 느끼는 감정이지만 모멸감은 공격적이다. 그는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가 바로 모멸감”이라며 “모멸감은 정서적 원자폭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우창 교수의 저작에서 “한국 사회는 오만과 모멸의 구조”라는 문장을 발견한 후 ‘모멸’이란 감정에 주목하게 됐다. 누구도 분석하지 않은 모멸감이란 렌즈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니 많은 사건이 해석됐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2일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을 엄청나게 가져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필요 없이 살았거나 반대로 너무 짓눌려서 마음의 에너지가 없다면 공감 능력이 제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2일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을 엄청나게 가져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필요 없이 살았거나 반대로 너무 짓눌려서 마음의 에너지가 없다면 공감 능력이 제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나라는 이제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 바뀌었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고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고도성장기가 무너지고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가 온 후 학생은 성적, 어른은 돈이나 지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졌다.

“신분 의식은 전혀 극복하지 못한 채로 신분제만 무너진 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한국처럼 사장님이 많은 나라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깍듯하게 떠받들 때만 존재 가치가 확인되니 약한 사람에겐 내지르게 된 거죠. 회사 내 갑을 논란 역시 역할상 윗사람일 뿐 인격적으로 윗사람이 아닌데 권력에 제한이 없어요.”

더욱이 저성장 시대에는 노동시장에서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모멸감은 특히 여성들이 겪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경로석에서 할아버지들은 거의 여성들을 상대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소리 지른다. 감정노동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모멸감의 가해자로 여성들이 합류했고, 피해자는 여성들이 여전히 많다.

‘땅콩 회항’의 주인공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직원들을 성희롱한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여성 리더들의 일탈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조 전 부사장은 오로지 나만 있고 나만 강요할 뿐 ‘너’라는 존재 없이 산 사람이죠. 이번에 엄청난 ‘너’를 만난 거죠. 대한항공에선 실상 늘 이런 일이 벌어져온 거예요. 일상의 부조리함이 견제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던 재벌기업의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죠.”

김 교수는 “이들은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과 닮게 된 명예 남성들”이라며 “권력은 일종의 책임이고 공적 권한인데 사유화하면 문제가 된다. 권력 앞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일부 여성 리더들의 일탈에 대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과 닮게 된 명예남성들”이라며 “권력은 책임이고 공적 권한인데 사유화하면 문제가 된다. 권력 앞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일부 여성 리더들의 일탈에 대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과 닮게 된 명예남성들”이라며 “권력은 책임이고 공적 권한인데 사유화하면 문제가 된다. 권력 앞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더 급격히 무너졌고 마을이 대부분 사라졌다. 더욱이 정보의 폭증으로 선망의 대상은 많아지고 비교 기준만 높아졌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아파트 경비원에게 아이를 인사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경비원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해도 부모가 들은 척도 안 한다”며 “예전에는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지지와 격려를 해주고 버팀목이 됐으나 지금은 기댈 언덕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가 제시한 사회적 해법은 두 가지다. 가정폭력도 여성이 죽어야만 공론화되는데 극단적인 사건이 터지기 전에 부조리한 관행을 견제하고 취약한 위치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선 스스로 내성을 키워야 한다. 거절은 삶의 한 과정이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한다. 김 교수는 “자존감과 회복 탄력성을 키워야 모멸감을 삶의 한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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