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사회 새 지평 여는 선구자 역할
조직 성별 다양성 확대 위해 30% 클럽 캠페인 앞장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프런티어(선구자)’로서 살아온 조형(71·사진) 미래포럼 이사장. 그는 여성신문 2014 올해의 인물 선정에 대해 거듭 “내가 받을 상이 아니다”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조 이사장은 이번에도 곁에 있는 이들이 돋보이도록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자리엔 빠짐없이 그가 있었다. 

조 이사장은 이화여대에 아시아 최초로 여성학 강좌를 만들던 1970년대엔 여성학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이후 80년대엔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대안문화운동을 펼쳐온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를 결성했고, 진보여성단체의 효시격인 ‘여성평우회’ 초대 공동대표도 맡았다. 늘 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꼬를 트는 마중물과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서울대와 미 하버드대에서 외교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75년부터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제자를 배출한 그는 정년 퇴임 후 경기도 양평 단독주택에서 산 1년을 제외하곤 늘 연구와 일에 매달렸다. 2009년 초대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인 고 박영숙 선생의 부름으로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후에는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을 위한 활동가 지원에 주력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2월 18일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조 이사장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해 보였다. 그러나 표정에선 새롭게 이사장직을 맡은 후배(이혜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에게 무거운 짐을 떠안긴 것에 대한 미안함도 엿보였다.

“한국여성재단은 여성운동의 중간 성과예요. 여성단체들이 기금을 모아 만든 단체는 전례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어요. 소외계층 여성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순수 복지재단과는 성격이 달라요. 기업의 사회공헌 역사가 오래되지 않다 보니 부침도 있었지만, 15년이 지나면서 여성재단의 투명성과 안정성은 외부에서 인정받고 있어요. 하지만 여성운동의 전환 시점인 지금부터 앞으로의 15년이 더 중요하죠. 이혜경 이사장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분의 능력과 인품, 진실성으로 보면 충분히 해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조 이사장은 앞으로 미래포럼을 이끌며 ‘30%클럽’ 활성화에 나설 계획이다. 30%클럽은 의사결정에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려면 임원의 30%는 여성이 돼야 한다는 캠페인으로 영국, 홍콩, 뉴질랜드 등에서 출범해 운영 중이다. 조 이사장은 공공부문에선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민간부문에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여성 임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은 구조와 작동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공공부문은 법으로 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지만, 민간부문은 30%는 목표 수치를 잡고, 각 기업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야죠. 얼마 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조직 내 성별 다양화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중요한 이야기예요. 조직 문화가 다양화돼야 임원 30%도 의미가 있는 거죠.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임원후보군이 더 늘어나고 이들이 고위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훈련도 필요하고요.” 이 부분에서 그는 최근 연이어 터진 여성 리더들의 부적절한 언행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금 고위직에 있는 여성들 중 상당수는 “남성적인 조직에서 생존해야 했기에 남성적인 조직문화를 내면화하지 않으면 안 됐었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어떤 의미에선 희생자이자, 선구자죠. 남성적인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 홀로 투쟁했지만, 어렵게 투쟁해서 쌓은 리더십이 남성화됐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조직에 더 많은 여성들이 있고 리더십을 훈련하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순화되고 세련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여성운동에 대한 백래시(반발)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을 넘어 일상에서도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이사장은 “정치·경제·사회적인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효과”라면서도 “우리(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고 왜 모르냐고 비난만 해선 안 된다”며 “왜 남성들이 어머니는 찬양하면서도, 여성을 혐오하게 됐는지 그 차이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여성운동과 여성정책 등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후배 활동가들에게도 “지치지 말고 유연해지라”고 조언했다. 

“시작은 반이기도 하지만, 시작한 것을 끌고 가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중간에 하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해코지 하는 사람에게 밀리거나 상처받기도 해요. 초지일관하는 것이 중요해요. 경력이 늘어날수록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초지일관할 수 있는 힘도 생길 것이고. 옆에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지지해줘야 해요. 그런 면에서 여성신문 역할이 중요하죠.” 

‘젠더 렌즈’로 사회와 여성을 들여다본 그가 생전 처음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제 일보다는 ‘나는 누구일까’를 생각하는 데 전념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진짜 속내다.

“아직 불러주는 곳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힘들어요. 행복에 겨운 말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젠 쉬고 싶어요. 꿈은 잘 끝내는 것이에요. 정년퇴임 전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더니 이효재 선생님께서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 다 못하고 죽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부터라도 내 몸이 원하는 것, 내 몸이 버텨줄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뭔가를 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