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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자/국회 여성특위 정책연구위원

바야흐로 탈(脫)정치, 아니 반(反)정치, 정치파괴의 시대다. 정치는 이제 주막집

‘안주거리’조차 못 될 형편에 놓였다. 사람들은 정치의 ‘정’자만 들어도 이

맛살을 찌푸리게 되었으며, 언론은 정치 ‘욕보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

학자들은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개탄하기에 바쁘다.

‘정치 씹기’가 마치 무슨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의 대속(代贖)이나 되는 것처럼,

정치는 말 그대로 동네북이 된 셈이다. 가히 ‘정치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위

기의 원인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해결방안은 간단하다.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정당구조를 쇄신하며, 문제 정치인을 퇴출시키면 되는 것이

다. 그러나 정작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할 정치인들은 무수한 칼집상처를 입으면서

도, ‘구질서의 정치’라는 요람 밖으로 박차고 나올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자

신들이 감당해야 할 몫마저 국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의 행동이 조직되고 있다. 바로 ‘낙천·낙

선운동’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자신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되물어야 한다. 과연 정치권 욕하는 것만으로 만사가 해결될 것인

가? 그것만이 능사인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닌, 또 다른 한 몫, 요컨대 유권자들

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없는가? 악질적 지역감정의 격화, 정경유착과 권력형 부정

부패, 패거리 정치 등등의 문제들이 과연 우리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시민운동 잘한다” 하면서 시민운동 언저리에도 가지 않는

위선적 이중성처럼, 그 똑같은 이치로 과연 우리들이 쏟아 붓는 비난이나 조롱만

큼 ‘대안 찾기’와 ‘참여하는 행동’이 우리에게 있었는가? 솔직히 우리는 자

신할 수 없다.

지금까지 정치현상에서, 또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책임문제는 사실상 ‘신성불

가침’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전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정

치권은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만 했다. 이는 비단 선거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정치행위, 예컨대 지역감정의 책임도, 선거타락의 책임도, 이합집산의 정당

행태도, 날치기 국회의 파행 책임도 모조리 정치인들에게 돌아갔다. 많은 지식인

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마저도 ‘안락한 양비론과 양시론의 강보(襁褓)’로부터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엄밀히 보자면 이것은 하나의 ‘병리적 증후군’이

었다. 국민들의 정치냉소와 탈정치화는 결국 심각한 정치퇴보를 초래하기 때문이

다. 탈정치가 초래하는 것은, 이를 틈탄 정치소외나 정치적 권위주의, 정치기득권

의 유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치발전을 위한 사려 깊은 고민

이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 정치인과 정치권에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결

코 아니다.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를 구성하는 다음에야 정치를 개혁하고

진전시켜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유권자들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피’ 수혈하고, ‘물갈이’하고 ‘신당창당’한다? 이러면 앞에서 열거한

문제들, 이를테면 지역감정, 선거타락, 이합집산의 정당행태, 날치기 국회의 파행

등등의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감스럽게도

“아니올시다”이다. 먼 과거를 들출 것도 없이 정치권 물갈이나 신당창당은 우

리에게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문에 정치가 개선

되고 발전됐다는 평가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선거시기에 릴레이투표니, 매표

니, 위장전입이니, 흑색선전이니, 심지어 갈비접대나 막걸리나 고무신 같은 향응

이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타락선거를 부채질한

공여자로서의 정치인과 똑같은 비중으로 그 이면에 수요자로서의 유권자들이 있

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나?

우리는 새로운 한 세기와, 새 천년을 맞고 있는 비전의 고빗길에 서 있다. 더구

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당장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게 될 것이다. 정치지체가 심

각한 만큼 유권자들의 각성된 정치적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요구되

는 시점이다. 무조건적인 탈정치와 반정치, 정치파괴를 외치기 전에 탈 기성정치,

반 기성정치, 잘못된 기성정치 파괴를 외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여성계가 거둔 커다란 수확중의 하나는 ‘정당법’에 30%

여성할당제를 명시한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정치할당제를 요구해

왔으나 3당 총무가 합의한 최종 ‘정당법’ 개정안에도 빠져 있다가 막판에 여성

의원들의 급박한 수정안 제출로 간신히 건져내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여성정치

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엄청난 것으로 여성정치참여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비례대표 여성할당 30%로 얻을 수 있는 의석 수는 14석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이제 정치가 더 이상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명했다는

점, 특히 이를 ‘정당법’에 명시함으로써 제도화했다는 점과 비록 비례대표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여성의 몫이 적어도 30%라는 하나의 기초선을 확보하였다

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제 향후 과제는 할당된 비례대표 30% 의석을 어떻게 여성 정치참여 확대의 발

판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만일 지금까지와 같이 여성 비례대표를 구색맞추

기 일회용으로만 활용한다면 30% 할당은 약간의 여성의석 증가 외에 별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이번에 30% 할당으로 진출하는 여성의원들이 다음과 같이 적

극적으로 나서야만 진정 할당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첫째, 30% 할당제로 선출된 여성들은 4년동안 의정활동을 충실히 함으로써 지

명도를 높여 다음 기회에는 지역구로 진출하도록 한다. 즉, 비례대표로서의 활동

이 지역구 출마를 위한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한국사회와 같이 인물위

주의 정치풍토에서 지명도가 낮은 여성들은 지역구 당선이 쉽지 않으나 의정경험

을 바탕으로 적극 도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정당의 공천과정도 의정활

동 결과 등을 중심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30% 할당된 비례대표는 여성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이므로 정당기여도도 높임으로써 당내 위치를 확고히 하여야 하며 정당내 성평

등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당내에 여성정치교육 프로그램을 주

도적으로 설치하여 꾸준히 여성정치인을 양산해 냄으로써 당내 여성인력을 공급

하는 기능을 하여야 한다.

셋째, 여성의원들은 의원신분으로 있는 동안 여성에게 불리한 각종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데 사명감을 갖고 활동함으로써 후배 여성들의 정치입문의 길을 닦아주

어야 한다. 또한 남성들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의정활동과 정책개발에 진력함으로

써 정치풍토를 인물위주에서 정책중심으로 바꾸어놓는 등 남성위주의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 솔선수범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에 얻은 비례대표 30% 여성할당제를 씨앗으로 여성들이 정치부문에 여성의

터를 만들고 뻗어나갈 수 있는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여야만 30%할당제는 그 의

미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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