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80%가 여성… 경영·관리직은 전무
여성 의료진, 경영 논의 틀에 나서야

 

한국노총 첫 여성 산별위원장인 이수진(45) 의료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12월 12일 여성신문과 만나 병원의료산업계 여성 근로자는 80%라 여성 근로자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노총 첫 여성 산별위원장인 이수진(45) 의료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12월 12일 여성신문과 만나 병원의료산업계 여성 근로자는 80%라 여성 근로자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이 노동조합에서 약하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고 싶어요. 감정노동의 어려움도 노동 가치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런 것은 제가 여성이기에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12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광혜관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이수진(45) 의료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섬세하게 현장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드러운 표정에도 포부를 얘기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의료산업계 구성원 중 70~80%가 여성이지만 지금껏 여성 대표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60년 한국노총 산하 26개 연맹 중 첫 여성 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11월 보궐선거로 당선돼 내년 12월 말까지 전임자의 임기를 이어간다. 지난 2011년부턴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이었고, 한노총 서울지역본부 부의장 겸 여성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여성인권, 노조 내 여성리더십, 여성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 등을 위해 힘썼다. 그 결과 2007년 대통령상, 2012년 여성신문 ‘미지상’(미래를 이끌어 갈 여성 지도자상) 수상자로도 뽑혔다.

단체협상을 진행하면서 눈에 띄는 결과물도 얻었다.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으로 해낸 뿌듯한 일을 묻자, 성희롱과 폭언·폭행을 징계 사유에 넣고, 코칭센터를 만들어 감정노동이나 갈등 발생 시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도록 한 일을 꼽았다. 여성이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남성 경영진은 성희롱 징계에 대해 ‘서로 조심하면 되지 않느냐’ ‘법도 있는데 굳이 징계 사유에도 넣느냐’며 난색을 표했지만 설득했다.

간호사 출신인 그가 겪었던 일들이자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문제들이라고 했다. 특히 대학병원 간호사들은 밤 근무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을 계속 하는 데다 의사의 지시를 받고 환자 및 가족과 대면하는 일이 가장 빈번하다. 각종 폭언, 폭행 등에 노출되지만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이들의 감정노동은 보호받지 못했다. “밤 근무는 제2의 발암물질”이라며 “간호사들의 유방암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13년 동안 간호사로 매일같이 교대근무를 한 선배로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싶었다.

병원 여성 근로자들이 겪는 육아 문제도 지적했다. 자신은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웠지만 직장어린이집이 없는 병원이 허다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일을 그만둘 상황에 처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여성들의 경력단절로 연결된다”며 “여성들의 모성권, 건강권이 무시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아이를 맡겨도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연세의료원은 대학병원 최초로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었다.

현재 의료산업계는 여성들이 80% 정도로 많지만 행정·관리 직군에는 턱없이 적다. 약사·간호사 직군을 제외한 인사, 기획, 경영 등 정작 경영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곳엔 없다. 연세의료원도 병원장, 부원장, 기획실장 중 여성이 없다. 그는 “여성 교수들이 (경영진으로) 의사결정의 틀에 들어가야 논의가 자연스럽게 되는데 관리직 여성인력을 늘리자고 하면 대번 ‘간호사도 많은데 사무처도 여자를 뽑으면 다 여자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여성 의료진의 적극성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떠나 국가 의료산업의 방향이 제대로 서면 풀릴 문제라고 했다. 민간에 무조건 떠넘기는게 아닌 국가가 국민 건강권을 생각한다면 이 분야 대다수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 문제도 개선된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병원에 돈이 없어 못 온다는 것은 OECD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가 건강권을 기본권으로 보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노조 활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내 가족이 행복의 전부”였던 사람이지만 “잘못된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노조를 조직 내 분란을 만드는 이들, 싸움꾼으로 보는 시선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노조원도 더 나은 환경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조직원이다.

“노조도 조직의 구성원이고 필요한 사람들이죠.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통해 팀워크를 잘 하면 환자들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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