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정아가 분한 선희, 평범한 노동자의 변화 그려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여성의 삶 일깨우는 감독의 진심 느낄 수 있어

 

생필품을 가득 싣고 끌고 다니는 수레, 카트. 장난꾸러기 아이도 가끔 태우고, 핸드백이나 옷가지가 과일이나 빵 봉지와 섞여 있는 풍경을 연출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늘 무심하게 끌고 다니는 이 수레가 손님의 입장에서는 이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물론 고객 대접 받을 때는 마트 옆의 허름하고 초라한 직원 휴게실이나, 창고에서 무릎 꿇고 손님에게 빌어야 하는 마트 내 직원들의 처지가 보일 리 없다. 영화 카트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가장 일상적인 노동의 현장을 가까이서 보게 만든다.   

사실 주인공 선희도 처음엔 노조가 뭔지, 연대가 뭔지, 시위가 뭔지 하나도 몰랐다. 그저 평범하게 아이 키우고, 몸바쳐 회사에 헌신하면 정직원이 될 줄 알았다. 배우 염정아가 분한 선희야말로 이름처럼 그저 ‘선한 여자’,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줌마 노동자다. 그러나 어느 날 문자 한 통에 정리 해고 통보를 받은 후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뀐다. 노조가 결성되고 한때 정규직이었지만 거듭된 임신으로 인해 정리해고된 싱글맘 혜미, 20년간 청소원 노릇을 하며 잔뼈가 굵어버린 순례, 그리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계약직에 머무는 젊은 미진 등이 합세한다. 

나이와 상황은 제각기 달라도 선희와 노동조합원들은 점차 하나가 된다. 그들은 ‘더 마트’를 점거하고 계산대 밑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서 잠을 청하거나, 줄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밥을 끓여 먹으며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은 마트란 일상적인 소비의 공간이 어떻게 완벽히 다른 의미의 노동 현장으로 변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정규직 대리 동준은 이들과 뜻을 같이하며 노동위원장을 맡는다. 정규직 시절, 처음에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혹은 혼자 몸이라고 애써 침묵을 지키려 들지만, 이들 역시 정규직에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자, 비정규직과 함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동준은 노조의 문제에 ‘그들과 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점은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예를 들면 선희가 파업으로 인해 돈을 벌지 못하는 사이,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선희의 고등학생 아들 태영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사장은 딱 2개월 일하면 일당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막판에 시치미를 떼고 온갖 구실을 대며 매몰차게 등을 돌린다. 부모가 모두 노동자이고 노동운동을 하며 파업 상태에 처해 있더라도 태영은 ‘빌리 엘리어트’가 될 수는 없다. 태영은 미래의 ‘을’로 언제든 선희가 파업을 감행한 계산대에 언젠가 대체인력으로 설 수도 있다. 즉 선희-동준-태영은 비정규직, 정규직, 학생 신분으로 뚜렷이 나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누군가에 의해 착취당할 수 있는 모두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다. 

 

영화 ‘카트’는 결코 만듦새가 정교한 영화는 아니다. 회사 측 입장도 평면적이고 노조원의 캐릭터나 마트 안에서 일어나는 첨예한 투쟁과 반목의 사건들은 건전지처럼 병렬적으로 연결돼 있다. 때론 마트 안을 돌아다니는 스테디 캠 카메라마저 다소 숨가쁘고 거친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희의 삶은 우리 안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여성-아줌마-노동자인 ‘을’의 문제를 대변한다는 점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심하게 물건을 담아 밀던 카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방패이자 경찰들과 맞서는 도구가 된다는 것. 마트라는 공간의 의미가 변하자, 그곳의 부속품이었던 카트의 의미가 변하고 마침내 평범한 일용직 노동자인 선희가, 그리고 우리가 변화한다. 

과거 독재정부에 항거한 학생들의 시위가 이제,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어진 현실. 이 벅찬 현실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와 여성의 삶을 일깨우려는 부지영 감독 진심, 그 둔중한 진심이 아프게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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