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제·시차출근제·여성네트워크 등 도입
가족친화경영은 시간·공간·자원을 재설계하는 것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회사. 요즘 유한킴벌리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저녁 7시 30분만 되면 강제로 사무실 불을 끄고 직원들의 퇴근을 독려하는 유한킴벌리의 조직 문화는 이미 3년 전 시작됐다. 뿌리 깊은 야근 관행을 회사 차원에서 끊어낸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다양성과 가족친화경영을 담당하는 김혜숙(49·사진) 다양성최고책임자·지속가능경영본부장(상무)은 “스마트워크는 기존 방식대로 야근하고, 더 많이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성과를 올리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이라며 “일하는 방식을 혁신함으로써 시간배분문제에서 벗어나 주어진 시간을 미래 경쟁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한킴벌리가 정시퇴근제를 비롯해 시차출퇴근제, 재택근무제 등을 도입하고 개인 자리의 구분을 없애 창의적 기업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김혜숙 상무도 ‘시차출퇴근제’를 통해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시차출퇴근제는 오전 7~10시에 출근해 오후 4~7시 사이에 퇴근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를 활용하는 직원이 본사 직원 580명 가운데 80여 명(14%)에 달한다. 김 상무는 “시차출퇴근제를 통해 아침 시간에 가사일을 하며 시간 재분배를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경력 단절을 겪지 않고 아이와의 유대관계도 유지하면서, 지구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을 겪으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유한킴벌리는 우수한 여성 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친화경영을 통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여직원 비율이 본사는 40%, 여성 임원 비율은 20% 정도로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가족친화 경영은 남녀 조직원 모두의 행복이 곧 기업의 생산성 확대와 지속가능 경영으로 이어진다는 경영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다양성 측면에서 여성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데 초점을 둔다. 2011년 여성 임원들이 모여 여성위원회를 조직하고, 여성위원회 실행조직으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여성네트워크(K-Win)도 이 같은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김 상무도 1987년 유한킴벌리에 입사해 올해로 24년째 일하며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그가 처음 입사할 당시 국내 기업문화는 여성이 일하기에는 척박했다.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그는 “유한킴벌리도 2004년 이전에는 육아휴직제도 사용률이 높지 않았지만 용감한 여성들이 하나둘씩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다시 복귀하면서 훌륭한 ‘롤 모델’이 늘어나자 육아휴직 사용률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면서 “유한킴벌리가 시도하는 변화와 혁신은 바로 이 경험과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기업의 일·생활 양립 정책의 주체는 기업에서 구성원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했다. ‘공’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기업문화도 좀 더 빨리 혁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대표적인 가족친화기업으로 손꼽히는 유한킴벌리를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가족친화경영을 ‘비용’으로만 보거나, 비용을 들인 만큼 ‘생산성’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가족친화경영을 후생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자원을 사람들의 생애주기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후생복지 프로그램을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눈높이에 맞춰 ‘빼고 더하는’ 것이 바로 가족친화경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성에 대해서는 “기업의 생산성은 다양한 영역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데, 가족친화경영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생산성으로 이어진다”면서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면 결국 지속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들도 모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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