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탈리' 가부장적 라오스에 반향
“여자가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한 사람도 있어”
메이크업아티스트 출신, 시나리오 작가 남편 응원에 영화 촬영

 

라오스 최초의 공포영화 ‘찬탈리’를 세상에 내놓은 매티 도(34·사진)감독.  ‘2014 아세안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라오스 최초의 공포영화 ‘찬탈리’를 세상에 내놓은 매티 도(34·사진)감독. ‘2014 아세안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요즘 뜨고 있는 해외 여행지는 어디일까.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가득한 ‘라오스’다. 라오스는 tvN ‘꽃보다 할배’ 출연진이 방문하며 여행족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더. 라오스에는 여성 영화감독이 몇 명 있을까. 답은 한 명이다. 지난 2012년 라오스 최초의 공포영화 ‘찬탈리’를 세상에 내놓은 매티 도(34·사진) 감독이 라오스의 유일한 여성 영화 감독이다. 메이크업아티스트 출신인 매티 도 감독은 ‘찬탈리’의 성공으로, 칸영화제에 라오스 감독 대표로 참여했으며, 토론토국제영화제 탤런트 랩에 참가 감독 열 명 중 한 명이 됐다. 지난 1일 ‘2014 아세안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영화를 본 라오스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여자가 생각을 한다’라는 것이었어요. 여주인공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거라고 본 거죠. 늘 라오스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고 조용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본 라오스여성들은 ‘이 영화야말로 자신의 본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고백했어요.” 

매티 도 감독이 만든 영화 ‘찬탈리’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 라오스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라오스에서 자신은 기가 센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쉽다”면서 “라오스에서는 아직 검열이 심하다. 호러 장르는 그냥 즐기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덜하다.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에 녹여 담담하게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사춘기 소녀의 불안감을 통해 라오스인들의 죽음에 관한 인식을 그린다. 라오스 비엔티엔의 외딴집에서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란 주인공 찬탈리는 죽은 엄마가 저승에서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심장약을 먹지 않는다. 영화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일상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태어난 매티 도 감독은 이탈리아와 미국의 독립 프로덕션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오랜 기간 일했다. 그의 가족은 전쟁 중 난민으로 전락해 미국으로 왔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는 1970년대 베트남전쟁 와중에 내란을 겪어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됐다. 매티 도 감독의 가족은 1980년대 다시 라오스에 돌아왔고, 매티 도 감독 역시 결혼 후 시나리오 작가인 미국인 남편과 함께 라오스에서 살고 있다. 

영화감독이 된 데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그의 남편은 이탈리아 유명 필름스쿨을 나온 인물로 라오스 정착 후 한 영화미디어 회사로부터 감독일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일하는 대신 아내인 매티 도를 추천했다. “도와줄 테니 도전해보라”고 그를 독려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면서 눈대중으로 많이 봐 왔으니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실제 남편은 ‘찬탈리’ 원고를 전부 썼다.) 매티 도 감독 역시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단다. 

 

이태리 유명 필름스쿨을 나온 그의 남편은 매티 도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태리 유명 필름스쿨을 나온 그의 남편은 매티 도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실, 촬영장에서 가장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예요. 이들이 어디 있는지 자세히 보면 감독님 옆에 있고 주연배우 옆에 있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직·간접으로 그들이 일하는 것을 많이 봐왔어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라오스’ 사람이라고 하면 신기해서 카메라를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관계자들도 꽤 있었어요.”

그러나 촬영에 들어가자 이론과 실전은 크게 달랐다. 매일 매일이 버거움의 연속이었다. 6명의 배우와 5명의 스태프 모두 세트장인 집에서 숙식을 같이하는 상황이었고, 촬영은 기본, 음식부터 배우들의 메이크업, 조명, 편집작업 등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다. 그는 “촬영 후반부에는 하루에 1~2시간씩 자면서 작업했다. 그땐 ‘내가 왜 이 짓을 하나’ 싶었지만, 결과물이 나온 후에는 평생 영화감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렵게 나온 장편 데뷔작 ‘찬탈리’는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 2012년 루앙프라방영화제(라오스)를 비롯해 판타스틱페스트(미국), 홍콩아시아안영화제 등에서 상영했다. 칸영화제에 라오스 감독 대표로 참여했으며, 토론토국제영화제 탤런트 랩에 참가할 수 있는 10명의 감독 중 한 명으로도 참여했다. 라오스 안에서도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그가 만든 인턴십 프로그램을 듣는 대학생도 늘었다.(다만 아직까지 여성은 없단다.)

사우디 최초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팬이라는 매티 도 감독은 “남성 중심적인 라오스에서도 용감한 여성 감독이 더 생긴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여성주의적인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에게 ‘한국은 어떠냐’고 묻자 “유럽인들이 한국에 가면 화장품을 꼭 사라고 했다”면서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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