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발 프로그램 또는 심층 보도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계보는 KBS의 '추적

60분'을 시작으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와 MBC의 'PD수첩'에 이르렀으

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매력적인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심층 보도 프로그램이란 조사연구에 기초를 두고 사건을 구성하는 모든 기본적

인 사실과 그 배경 등을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보도 방식으로, 문제

나 사건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는 목적성을 가진 프로그

램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성격상 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심층 보도 프로그램은 때로 예상이나

기대를 뛰어넘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

한 것으로는 방송역사상 처음으로 방송중단 사태를 야기했던 'PD수첩'의 ‘만

민교회사건’과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불러일으켰던 '그것이 알고싶

다'의 ‘신애를 살립시다’ 편이 있다. 그 파급효과는 계속되어서 전자의 경우

방송사와 만민교회 측은 소송과 반론보도 청구권 등과 같은 법률적인 시비에 휘

말렸으며, 후자의 경우 많은 시민들이 신애를 돕는 데 동참했고 계속적인 후속보

도가 이어졌다. 심층 보도 프로그램의 막강한 영향력과 높은 위상을 단적으로 보

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층 보도 프로그램의 절대적인 권력의 향유 뒤에는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밀무기가 숨겨져 있고 이러한 비밀병기는 한 건 터트리기 식의

흥미 위주의 저널리즘의 형태로 나타난다. 성희롱, 성폭력, 원조교제, 미아리 텍사

스촌 이야기, 전화방 등... 그리고 이러한 자극적인 이야기 속에는 여지없이 주인

공이건 주변인물이건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여성들이 등장한다. 원조교제를 하

는 중학생,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가출하여 룸살롱에서 일하는 아줌마, 미아리 텍

사스촌의 접대부, 집단 강간이나 성폭력의 피해자 등,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정

형화(stereo-type)되었다. 가장 비뚤어지고 일탈된 여성들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실상을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이들로부터 이끌어

내는 인터뷰의 내용들은 직설적이고 자극적이다. 집단 강간의 피해를 입은 장애

여성에게서는 “옷을 벗기구요...”라는 멘트를 이끌어내고 원조교제하는 중학생

의 “저는 15살인데요. 용돈이 필요해요”라는 음성 메시지, 사이비 교주에게 성

상납을 해온 여성들이 육체관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는 내용이나 사회

보호시설 원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구타와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들의 원장의 성

폭력에 대한 자세한 묘사 등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극도의 현장감과 현실감을

살리기 위한 세부사항이나 세부묘사, 재연 기법에 대한 치중은 궁극적으로 그 프

로그램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비리고발을 통한 사회적 제도적 변화로까지 연

결되지 못하고 있다. 용두사미라고 할까?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아 긴

장과 흥분은 느꼈지만 감정과 정서적인 이입과 공감일 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득과 동의에는 좀 약하지 않나 싶다.

심층 보도 프로그램들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리고 비교적 많은

시간 공을 들여 만드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 책임감이나 신뢰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어둡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안이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문제를 보여주고 전

망하는 과정에서의 강약의 조절이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관심

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해 근원적인 문제제기나 사회 국

가적인 큰 문제를 고발하지 못하고 작은 문제들이나 피상적인 취재에 머무른다는

점,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를 포함한 인권 관련 문제 등 더 보충되어야 할 부분

이 많다.

또한 여전히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카리스마를 지닌 남성(탤런트나 영화배우)

이거나 남성 제작자들이고 프로그램 속에 비쳐지는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들에 의

한 성과 폭력의 피해자 혹은 잘못된 성 풍속을 만들어내는 주체자라는 이율배반

적 존재로 등장한다.

성 그리고 폭력의 굴레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피해자로서의 여

성의 이미지에서 한 단계 올라서서 상처를 극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는 여

성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 아니면 이러한 심층 보도 프로그램의 길라잡이로서 여

성의 기용은 너무 파격적인 것일까?

안진아/21세기 여성미디어네트워크 매체비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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