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대 트렌드 리포트’가 선정한 5대 키워드
‘떳덕후’ ‘놀족’ ‘썸맥’ ‘쏠로몬’ ‘ZIP슈머’
재미없고 단순한 방식의 사회 비판은 거절

 

건담 덕후란 말이 있을 정도로 건담은 인기가 높다. 사진은 지난 해 용산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건프라 엑스포’의 모습.
'건담 덕후'란 말이 있을 정도로 건담은 인기가 높다. 사진은 지난 해 용산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건프라 엑스포’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떳덕후’ ‘놀족’ ‘썸맥’ 2015년 20대 트렌드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20대가 즐겨 쓰는 이 단어들은 외국어와 한글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국어학자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하나의 트렌드로 20대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이 단어들을 통해 향후 10년 후 사회를 내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발간된 ‘2015 20대 트렌드 리포트’(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20대 트렌드 5대 키워드로 ‘놀족’(일상의 놀이화, 놀이의 일상화), ‘떳덕후’(떳떳한 덕후), ‘썸맥’(넓고 얕고 짧게 만나는 인간관계), ‘쏠로몬’(소유보다 차기를 소비), ‘ZIP슈머’(압축 소비의 세대)를 꼽았다.

‘놀족’은 소비는 물론 방송이나 기부, 선거운동까지 무엇이든 놀거리로 바꿔놓는다. 햄버거 세트 메뉴에 끼워주는 슈퍼마리오가 단 사흘 만에 전국 매장에서 매진된 경우가 하나의 예다. 대단한 장난감이어서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이 ‘겟(get)’한 장난감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재밌어서다. 유튜브 영상을 짜깁기해 재치 있는 멘트를 달아놓은 사진에 제목을 다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인기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퀄’(좋은 질)은 아니지만 인기가 높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SNS에 올리고 공유하는 콘텐츠는 진지한 의미 부여를 거부하는 ‘가지고 놀 수 있는’ 콘텐츠다.

‘떳덕후’는 일본 ‘오타쿠’를 한글로 음차해 쓴 덕후에 떳떳하다의 앞글자 ‘떳’을 붙여 만든 말이다. 떳떳한 덕후는 덕후란 말 자체가 가진 부정적 뉘앙스에 대한 반격이다. 집에서 애니메이션 물품을 모으고 게임이나 하는 게으른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당당한 취향이란 의미다. 이들의 ‘아웃팅’은 성공한 덕후들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덕질’을 공개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예컨대 배우 이시영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건담 덕후임을 공개해 오쿠 히로야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간츠’의 홍보대사로 발탁됐고, 가수 케이윌은 아이언맨 피규어를 방송에 들고나와 아이언맨 덕후들의 찬사를 받았다.

 

썸은 타지만 이성친구는 없다고 말하는 20대들이 많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썸은 타지만 이성친구는 없다고 말하는 20대들이 많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썸맥’에서 썸은 어떤 것(some)이란 영어 단어로 사귀는 건 아니고 호감만 갖고 연락을 주고받는 미묘한 관계를 말한다. 20대들 사이에 붐처럼 일고 있는 온라인상 연애 상담도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연애를 하지 않는다.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월간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서 남성의 33.8%, 여성의 35.6%만이 ‘연애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연애를 하는 이들은 25~29세, 대졸, 연봉은 2500만~3500만원, 정규직 범주에 들어 20대가 현실 조건이 되지 않으면 연애를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요즘 청년들은 모바일을 통해 연락을 하며 ‘썸’을 타기 때문에 단절이 쉽고 언제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쏠로몬’은 무조건 값비싼 상품을 소유하기보다 가치를 소비하는 이들을 뜻한다. 중고시장이 패션피플과는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강남, 이태원, 홍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고벼룩시장은 신진 아티스트들의 인큐베이터 공간이자 동네 주민들이 기다리는 교류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감성을 공유하는 문화 공간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20대가 소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꼭 필요한 것이라면 중고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집이나 공간을 저렴한 값에 공유하는 ‘에어비앤비(Airbnb)’나 차를 몇 시간 빌려주거나 바꿔 타는 카 셰어링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ZIP슈머’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20대는 정보가 아무리 유용해도 자신에게 꼭 필요하지 않으면 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과거 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쭉 읽어나갔다면 요즘은 원하는 분야의 원하는 기자의 기사만 골라 메일로 받거나, 친구 혹은 좋아하는 인사가 SNS에 ‘좋아요’라고 누른 글을 읽으면서 취사선택한 정보를 소비한다. 20대는 걸러진 콘텐츠를 소비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 안에 공부와 아르바이트, 스펙 쌓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콘텐츠 하나하나에 긴 시간을 보내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2015 20대 트렌드 리포트 대학내일20대연구소, 홍익출판사
'2015 20대 트렌드 리포트' 대학내일20대연구소, 홍익출판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20대 트렌드를 저속하거나 설익은 것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를 학교 후문에 붙인 것도 20대, 대만의 친중국 행보에 입법원 점거란 초강수를 둔 것도 20대 대학생들이었으며, 홍콩에선 선거안 철회를 요구하며 ‘우산혁명’을 일으킨 것도 18살 고등학생과 20대 대학생이 주축이 됐다. 이들이 논쟁하고 거리에 나오는 매개는 대부분 온라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뤄졌다.

20대는 자신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박진수 20대연구소 소장은 “지금의 20대는 노는 것을 좋아하고 심각한 것은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그들이 가장 잘 갖고 노는 것을 이용해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잘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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