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모성’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기쁨도 잠

시, 전적으로 떠맡겨지는 육아로 인해 인생을 저당잡혀야 하는 현실에서 모성은

여성들에겐 그야말로 ‘저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을

‘축복’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여성들, 그리고 이에 함께 하는

남성들이 있다. 바로 ‘공동육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기혼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가 사회에서

얘기하듯 직업의식이 남자들보다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어디든 맡겨야 하는 상황이 나한테도 닥치고 기존의 놀이방이나 어린이집

에 적응하지 못하는 딸아이를 보며, 육아문제가 나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

는 걸 절감하고 여성문제에서 육아문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

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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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했던 김정희 씨(42·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전임연구원)가 여성주의 보육운동에 참여한 이유다. 그가 “나도

일하면서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육아방식을 고민”하던 중 찾게 된 것이 ‘공동

육아’다.

공동육아는 부모가 직접 보육시설을 설립하고 교사와 함께 운영하는 새로운 공동

체적 육아방식이다. 지역 단위로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공동 출자금으로

공간을 마련하고 교사를 직접 채용하고 운영도 함께 한다. 이러한 공동 책임과

공동 운영으로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라는 인식 속에서 아이들을 키

우자는 것이다. 김씨는 ‘공동육아’야말로 여성주의 보육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육아는 여성만의 책임으로 여겨지던 육아가 남성은 물론 사회의 공동 책임이

라는 의식 전환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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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연구원 정병호 공동대표 겸 원장

사실 공동육아운동의 출발은 여성운동적 시도라기보다는 대안 보육운동·교육운

동에 대한 관심에서였다. 첫 시작은 정병호 공동육아연구원장(45·한양대 문화인

류학 교수)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70년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야학운동과 저

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시설을 운영하면서부터였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부

유층 아이들과 비슷한 출발선상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취학전 교육이 중요하

다는 계급 문제에 초점을 둔 교육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변화된 사회와 새로

운 미래를 위한 대안적인 아이들 교육과 육아운동이 되었다. 90년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이 발족됐고, 92년에는 ‘공동육아연구

회’를 설립했다. 그후 공동육아 실천의 장인 어린이집을 하나둘 만들어 나가면

서 ‘공동육아연구원’(공동대표 정병호·이기범·조형)으로 조직을 개편, 어린이

집 지원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교사 교육 등 공동육아운동의 구

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공동육아 형태는 정치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꿔 일본, 미국, 유

럽 등지를 돌아다니며 대안 육아문화를 연구해 왔던 공동육아연구원장 겸 공동대

표인 정병호 씨에 의해서 틀이 잡혔다.

여성과 아이가 함께

행복할 권리

그는 “인간의 전체 생애주기에서 육아의 시기야말로 어른들에게나 아이들에게

나 삶의 방식을 본질적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에, 공동

체적인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내면화하면서 장기적이고 점진적이긴 하지만 본질

적인 사회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사회문

화적 변화에는 ‘성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포함된다며 “결혼, 출산, 육아

의 중요한 시기에 진보적인 남성들도 무기력하게 보수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 매

달리게 되는데,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재사회화되는 계기를 가

져오고 평등한 가정을 이루고 제대로 된 아버지 역할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

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육아운동에는 조형 공동대표를 비롯한 많은 페미

니스트들이 참여하고 있다.

여성학 강사로 딸 하나를 둔 이숙경 씨(37)는 신촌지역 공동육아협동조합 ‘우

리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공동육아를 시작한 이유는 무

엇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인’육아방식 때문이었다. “사설 어린이집은 깔끔하고

시설이 고급일지 모르지만 꽉 짜여진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그저 따라가야 하는

데 비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풀어놓는다”는 것. 방치로서가 아니라

자율을 중요시하는 육아 철학에서다.

이경아 씨(34·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도 시설이 비교적 좋은 구립 어린이집

에 첫아이를 보냈지만 관료적인 운영과 통제 중심의 보육에 실망했다. “정기적

인 발표회 준비를 위해 2개월간 지하강당에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똑같은 행사

연습을 되풀이시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소심하고 자기표현을 억제

하는 아들의 성격이 더 굳어져 갔다고 얘기한다. 그뒤 고양시로 이사를 한 그는

일산의 ‘야호! 어린이집’에서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는 이들은 기존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

이들의 부모, 육아를 함께 책임져야 할 맞벌이 부부와 같은 일반인들과 대안적인

육아방식, 육아의 질과 내용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94년 공동육아 어린이집 1호로 문을 연 ‘우리어린이집’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에 위치한 이층 양옥이다. 미끄럼틀과 시소, 모래밭에서 마음껏 뒹굴며 뛰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터전을 구할 때 우선조건은 이처

럼 땅을 밟을 수 있고 흙을 만질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체험적인 육아방식을 강조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선 놀이감도

환경호르몬 등에 노출될 수 있는 플라스틱 대신 한지를 이용하거나 털뜨개질로

직접 만든 ‘손끝이 따뜻해지는 놀이감’을 이용하고, 아이들의 간식이나 식사도

무공해 유기농 재료들을 이용한 먹거리들이다. 또 다른 어린이집에는 없는 독특

한 프로그램으로‘나들이’가 있다. 자연환경을 즐기며 아이들이 마음대로 산책

할 수 있도록 근처 산이나 학교 등지로 나들이를 나간다. 매일 오전 나들이로 아

이들의 얼굴색이 가무잡잡해졌지만, 그만큼 건강해졌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은 때론 엄마, 아빠같기도 하고 친구같기도 하다. 여

기선 선생님이란 호칭이 없다. 모두 별명으로 부른다. 양파, 그대로, 무지개, 맛단

지, 들꽃, 호도, 달콩이. ‘우리어린이집’ 교사들의 별명이자 호칭이다. 공동육아

교사를 시작한 지 4년째라는 양파 이순진(30) 씨는 “아이라기보다 조금 ‘작은

사람’을 대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권위를 내세워 내 뜻대로 하지 않고 존중하

고 자율에 맡기고자” 한단다. 아이들이 모여 스스로 의견을 내고 규칙을 세우는

회의 시간인 ‘모둠’도 그런 취지에서 만든 제도다.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모두 자기 이름으로 된 ‘날적이’가 있다. 교사와 부모가

어린이집과 집에서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지 형식으로 적으며 아이의

생활을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아마(아빠 엄마의 줄임말)’라고 불리는

부모들은 1년에 한 번 어린이집에서 하루종일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일교사로

참여하는 경험도 한다. 아이를 교사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같이 책임진다는

의식으로 교사들이 재교육을 받으러 갈 때면 으레 부모들이 아이들을 봐준다. 공

동체적 생활과 자율을 기본으로 한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민

주적이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훈련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게 부모들의 이야

기다. 또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성별, 계층, 장애에 상관없는 열린 공간이다. 남자

여자 아이의 구분이나 장애아 비장애아의 구분이 없는 통합적인 사람을 길러낸다

는 것.

‘우리어린이집’에는 생후 3개월부터 취학전 아동까지 31명의 아이들, 28가구가

참여하고 있고, 7명의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각 지역의 조합마다 사정에 따

라 다르지만 대개 20∼30가구가 조합을 구성해 각 4백∼5백 만원 가량의 조합비

를 내서 만든다. 아이가 자라면 탈퇴하면서 조합비를 돌려받고 그 빈자리를 또다

른 부모들이 채운다.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16곳, 강원도 대전 청주 충주 부산 대

구 등 6곳에 어린이집이 있고, 취학 어린이를 위한 방과후교실 6곳, 그리고 저소

득층 어린이를 위한 방과후교실 3곳이 있다. 기간에 비해 빠른 사회적 확산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유아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공동체문화를 실험하는 공동

육아운동이 어느 정도 사회적 호응을 얻은 셈.

창조적 통합적인 어린이가

자라는 열린 공간

사실 만만치 않은 출자금 부담이 공동육아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외국과 달리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전혀 없는 한 재정 마련은 부모들의 전적인 몫

일 수밖에 없다. 전세금을 줄여가며 어렵게 만든 출자금으로 공동육아운동에 참

여하는 부모들도 있어 ‘공동육아연구원’사람들은 힘을 얻는다. 대안적 공동육

아의 모델이 더 확산되기 위해선 육아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보는 세계적 추세

에 맞춰 우리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대 적으로 필요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정병호 공동대표는 “영세민을 대상으로 한 최저 수준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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