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아름다운재단 후원으로 캄보디아 여성 지원
유흥업·공장노동·철거민 여성들 연대의 장
춤과 공연 통해 부조리한 여성 현실 꼬집어

 

가정폭력은 이곳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여성신문
가정폭력은 이곳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여성신문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는 아시아 여성 후원 사업을 하는 ㈔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과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와 함께 캄보디아 방문길에 올랐다. 이들은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아 캄보디아에 여성활동 지원사업을 했는데 그 사업의 이름이 ‘젠더카페’다. 이 사업의 협력 기관인 GADC(Gender and Development Center)는 다양한 여성운동 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들의 운동을 포괄적으로 지원한다. 이 사업을 통해 개인적인 상담을 넘어 그들 간 소통을 통해 새로운 의식 향상과 공동체 형성을 만들도록 돕고 있다.

젠더카페는 여성들의 직업에 따라 만들어진 모임이다. 비공식 노동을 하는 가사노동자 여성들, 공장 여성 노동자들, 유흥업 노동자들, 그리고 철거민 여성들이다. 이들과 함께 1박 2일 캠프를 떠난 것. 캠프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 한 것은 결혼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폭력 속에서 많은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증명서를 발급받지 않은 여성이 80%를 넘고 이들은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어 이런 문제에 대해 홍보하고 있었다.

 

젠더카페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최형미
젠더카페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최형미
또한 가정폭력은 이곳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여성들은 남편들이 폭력을 휘둘렀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감옥에 있으면 당장 돈을 벌어올 사람이 없고, 가정이 흔들린다는 문제로 다시 와서 남편을 감옥에서 꺼내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의 폭력은 지속되지만 다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젠더카페는 이러한 딜레마적인 문제를 가져와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경제적인 불평등과 의존이 어떻게 폭력으로 작동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했다. 또한 여성들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지속적인 의식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협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로의 의견도 나누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컴컴해진 바닷가에 불이 밝혀지고, 스피커가 설치되고, 테이블이 놓이고 음식이 차려졌다. 각 팀의 발표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온 팀은 ‘유흥업소 여성들의 권리’에 관한 연극을 했다. 여성들이 업소의 입구에 대기하고 있으면 남성들이 들어와 이들 여성 가운데 한 명씩 골라 자신들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남성들은 유흥업소 여성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면서 그들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유흥업 일자리는 법적으로 인정된 자리입니다. 우리를 여성으로 존중해 주세요!” 여성들이 이렇게 외치면 남성들은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겠다’고 뿌리치면서 그 집을 떠나버린다. 힘겹게 인권에 대한 실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연극이었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강간을 당했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모욕을 주고 결국 여성을 죽음으로 몰았던 한국의 사례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여성 공장노동자 팀은 부자들의 생활에 대해 공연했다. 한 벌에 100달러짜리 청바지를 만들어도 그들의 월급은 한 달에 80달러다. 그들은 부자들을 조롱했다. ‘구할 수 없는 음식을 어린아이처럼 찾고, 의미 없이 돈으로 자신을 과시하며, 처녀성을 돈으로 거래하고…’ 무례하고 폭력적인 그들의 일상을 한 판 놀이판으로 만들고 그들은 무대를 떠났다.

그러자 한 그룹이 우르르 몰려왔다. ‘철거민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여성이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여성들이 모두 따라 불렀다. 저 멀리 바닷가를 거닐던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캄보디아는 프놈펜, 주변 도시 그리고 외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철거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정부가 특정 지역을 공장 부지나 건축 부지로 일단 결정하면 거주민들은 그 지역을 떠나야 한다. 이때 정부가 집단 이주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전기나 수도, 학교도 없는 열악한 곳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킨다. 또한 이들에게 형편없는 보상을 해주어서 결국 철거 대상이 되면 생존권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이런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 계층인 여성 노인이라고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이들에게는 철거가 곧 생존권의 박탈과 같은 의미였다.

유흥업 노동자들, 가사노동자들은 돈을 모아 철거민들을 지원했다. “지금 우리는 안전한 공간 안에 있고 풍요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잃고 고통 받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유흥업 종사자였고 지금은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여성의 고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깜폿의 밤이 깊어지자 해변에서 여성들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움츠러들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춤은 이들을 변화시켜요. 이들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자신감을 심어주지요.”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팔을 엇갈려 함께 춤을 추면서 이들은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삶이 거칠다는 것, 여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는 이들의 즐거운 축제를 막지 못했다. 춤을 추며 이들은 그 단단한 현실을 또다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멀리 11월의 캄보디아 바다가 뜨겁게 이들과 함께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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