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일은 여성정책사에서 한 획을 그은 날이다. 이날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무회의에서 민법개정안을 의결한 지 1년5개월 만이다. 호주제 폐지는 남녀 차별의 상징으로 여성계의 40년간 숙원 사항이자, 참여정부의 공약 사항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호주제 폐지는 부처와 민관의 성공적인 협업 모델을 보여준 보기 드문 사례다. 법무부의 민법개정안 실무 작업, 여성단체의 사회적 분위기 조성, 법조인들의 외곽 지원이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 결실을 맺었다. 호주제 폐지를 하려면 민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법 개정은 법무부 소관 사항이다. 당시 지은희 여성부 장관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함께 하며 친분이 두터웠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에 대해 두 부처의 장관이 합의를 하면서 정부 내 진행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필자는 그 당시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여성부 차관의 전화를 받았다. 호주제 폐지와 관련해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을 구성하려 하는데 부처 간 협조를 확실하게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국무회의에 보고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취지였다. 국무회의에 보고되고 열흘 뒤인 2003년 5월 6일 특별기획단이 발족됐다. 법무부와 여성부 등 7개 부처와 가정법률상담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3개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기획단장은 여성부 차관이었다.

현실적으로 이혼·재혼 가정이 늘어나는 등 가족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혼한 여성이나 혼인 외 자에 대한 차별로 인한 민원이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선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는 유림이 있었기에 설득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정부에서 제출한 민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에는 획기적인 사안들이 담겨 있었다. 호주에 관한 규정이 삭제됐고,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 신고 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했다.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 또는 자녀의 청구에 의해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자녀의 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호주제 폐지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다. 여성부 장관은 2003년 11월 20일 헌법재판소에서 구두변론을 했다. 장관이 헌재에서 구두변론을 하는 것은 헌재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헌재는 2005년 호주제가 헌법상의 양성평등에 위반된다고 위헌 판결을 내렸다.

민법개정안이 국회로 이송되고 나서는 법 통과를 위해 대국회 설명과 논리가 필요했다. 여가부 장관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협조를 구해야겠다고 말했다. 당시 야당 대표는 현재 대통령인 박근혜 의원이었다. 사실 여성 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지만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했다. 면담을 끝내고 대표실을 나오는 장관의 얼굴은 환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 힘을 실어주겠다는 답을 얻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법개정안에 대해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자유투표 했다. 실제 국회 표결 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도 많은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호주제 폐지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여성부 장관과 성균관장의 만남이다. 호주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문제가 50년 넘게 지속됐는데 단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던 여성계와 유림이 처음 만난 것이다. 당시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임명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된 1월 12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을 방문해 최근덕 성균관장을 만났다. 기관장들의 만남을 위해 양측 실무급 회담은 필자와 최영갑 성균관 총무처장 간에 이뤄졌다. 실무자 간 대화에서도 성균관도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개혁과 혁신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이 만남에서 장 장관은 여성계와 유림은 물론 호주제 폐지 협조 요청뿐만 아니라 폐지 이후에도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유림의 협조를 구했다. 여성 장관들의 열정과 추진력으로 유림 설득, 대국민 홍보, 단체들과의 협력, 법조계의 전폭적인 지원, 부처 간 공조를 이끌어냈고 40년간 지속돼온 여성계 숙원사업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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