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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를 방문했던 감흥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북측에서도

시종일관 부드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호감을 뚜렷이 표시하면서,

자신들도 서울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 표현하더군요.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이처럼 비정치적인 민간차원에서의

인도주의적 교류가 절실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난 10월 27일 대한적십자사(한적) 창립 92돌 기념식이 열린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만난 대한적십자사 윤미혜 인사과장이 상기된 표

정으로 전한 말이다. 마침 정원식 총재가 이날 기념식에서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면회소를 양측이 합의하는 장소라면 한반도내

어디든지 설치하자고 제의한 직후라 한층 실감나는 얘기이기도 했

다.

윤 과장은 한적 역사상 처음으로 북송 식량수송팀의 여성단장이 돼

잔잔한 화제를 모은 인물. 그가 단장으로 발탁되기까지는 84년 남한

의 홍수피해때 북쪽에서 보내온 구호물자를 인수받으려고 대성동에

간 일과, 이듬해 모국방문예술단 방문프로그램에 참여한 일 등이 경

력으로 인정됐다는 후문이다. 그는 이화여대 가정학과 졸업후 76년

한적에 입사해 근무하며 50세 가까운 나이에 뒤늦게 대학원에서 사

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등 근 20여년 사회봉사를 업으로 삼아 활동한

전문인이다.

윤 과장은 지난 7월 말 북경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대표접촉 3차 회

담 결과 옥수수 기준 5만톤 전달이 합의된 제2차 구호물자 수송에

참여했다. 그는 9월 26일부터 10월 12일까지 16박 7일 동안의 출장

기간 동안 중국 요녕성 단동시에 체류하며 다리를 건너 2-3분 거리

의 신의주를 왕래, 5차례의 방북을 했다. 이는 제2차 구호물자 수송

에 파견된 63명중 최장기간 체류. 수송단 구성은 안기부, 통일원, 한

적 측 각 1명씩 3명으로 짜여져 있었고, 이들중 한적 측 인사가 단

장을 맡았다.이 수송단엔 여성이 총 3명 포함돼 있었는데, 모두 50대

로 한적 인사들이었다. 이 수송에선 화차 19량 분량의 옥수수 1천1

백40톤과 화차 47량 분량의 수수 2천8백20톤등 총 3천9백60톤 화차

66량분이 북한적십자 측에 전달됐다.

방북기간 중 윤 과장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3인으로 구성된

북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측 인사들의 성의있고 우호

적인 태도. 특히 단장을 맡았던 박경환 동포사업부 과장은 수년간의

해외경험으로 서구문화에 익숙, 레이디 퍼스트 정신을 유감없이 발

휘하며 윤 과장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측은 60여명 인원이 수송에 참여한 반면, 북측은 10명 남짓

한 정예 훈련요원들이 인적 구성이 바뀌지 않은 채 교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쪽의 자유분방하고 자신만만한 태

도가 많은 자극이 됐을 것입니다.

특히 해로가 아닌, 육로로 수송하는 것이 양측의 상호이해를 한층

정겹게 해 화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적지않은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식량수송 뿐만 아니라 각 분야별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절감했습니다.”

윤 과장은 “여성동무가 와서 더욱 더 분위기가 좋다”, “남조선

에서 보낸 것이 중국 것보다 훨씬 좋다” 등으로 동포애를 은근히

과시하던 북적측 사람들과 근본적인 동질성을 새삼 깨달은 것을 큰

성과로 꼽는다. 아울러 한적내에 여성들도 얼마든지 식량 북송 임무

를 맡을 역량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인정을 받은 것도 또한 보람으

로 여긴다. 사실 아현동 가스폭발,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재난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이들이 바로 한적 여성들이기에 실전

훈련에서 만큼은 철저히 전문성을 쌓아왔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혼인 젊은 여성들에겐 이런 파견임무가 아직은

불가능하다거나, 북한도 많이 자유스러워졌다고는 하나 남한측 인사

들이 머무는 숙소에 도청장치를 하고, 남북한 직로가 개설되지 않아

중국을 경유하는 관계로 빈번히 퇴송을 시켜야 하는 불량품 옥수수

와 수수등을 중국에서 구입해야 된다는 점등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가로놓여 있음이 안타깝다고 윤미혜씨는 전한다.

'박이 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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