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타협, 상생과 상호 예의의 생산적 불문율 필요

 

텅빈 국회 ⓒ여성신문
텅빈 국회 ⓒ여성신문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앞두고 또다시 파행했다. 새정치연합이 국회 의사 일정 전면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여야 원내대표단이 합의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지원에 대해 새누리당이 합의를 파기했다면서 예산결산특위를 포함한 전 상임위 의사일정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 대표는 “반복되는 새누리당의 누리과정 합의 번복과 무책임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누리과정 국고 지원 금액(5233억원)을 합의하지 않았다”면서 야당이 국회 보이콧에 들어간 진짜 이유를 의심하고 있다. 어차피 국회 선진화법에 의해 올해부터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안이 예산 부수 법안과 함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 때문에 야당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여당과 협상해왔던 이명박 정부 관련 이른바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법인세 인상 등에서 무엇인가 얻어 내려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이 청와대, 전(前) 정권, 법인세라는 3대 성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기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으면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야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법안과 예산안 심사가 또다시 파행으로 치닫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의회 불문율이란 “의회 과정에서 의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문화돼 있지 않은 행동규범으로 의회 기능의 활성화, 다변화, 효율화를 제도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성숙한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는 ‘상호 호혜에 관한 불문율’ ‘의원 상호 예의에 관한 불문율’ ‘의정업무에 관한 불문율’ 등과 같은 다양한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불문율을 갖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불문율이 미국 의원들로 하여금 대통령제하에서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인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 건강한 정부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주고 있다.

한편, 한국 국회가 예산안 등을 둘러싸고 빈번하게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은 미국과 같은 생산적인 불문율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반대로, 여야 간 갈등을 고착화시키는 비생산적인 불문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국민의 대표 기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 상생과 상호 예의와 같은 생산적 불문율을 조속히 만들어 가야 한다. 특히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의원들이 강제적 당론에 예속되지 않고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더불어 여당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행보를 해서는 안 된다. 가령 교육부 장관과 여야 간사가 합의한 내용을 여당 원내 수석부대표가 제동을 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으로 협상이 깨지는 이유는 협상 당사자 중 한쪽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거나 합의한 사항을 파기하거나 협상 사항을 전혀 다른 사항과 연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간에 효율적인 협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당이 청와대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청와대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또한 야당은 퇴행적인 ‘법안 연계’ 투쟁을 지양해야 한다. 야당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걸핏하면 연계 투쟁과 장외 투쟁에 돌입했다. 물론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여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정도가 아니다. 야당은 예산과 국정조사를 연계시키는 것보다 분리 처리하더라도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역량과 정치력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은 기혼 여성 5명 중 1명이 결혼과 육아, 살림 등으로 직장을 포기한다는 참으로 우울한 소식을 발표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규모가 무려 213만9000명에 해당된다. 이제 국회가 파행만 거듭하지 말고 이런 사회문제에도 더 많은 관심을 보여 획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회다운 국회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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