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성 청소년 알바생 절반, 최저임금 미달
인격무시·욕설·폭언·성희롱 비일비재
‘10대 노동=일탈’로 보는 시선 달라져야

 

영화 ‘카트’에서 주인공 선희의 아들 태영과 친구 수경은 쪼들리는 집안 형편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한달을 꼬바가 일했지만 업주는 “네가 한 게 뭐가 있느냐”며 태영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떼먹으려 한다. 이때 “날짜 지난건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요”라고 호소하는 태영의 목소리는 현재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이 내몰리고 있는 차가운 현실을 대변한다. ⓒ명필름
영화 ‘카트’에서 주인공 선희의 아들 태영과 친구 수경은 쪼들리는 집안 형편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한달을 꼬바가 일했지만 업주는 “네가 한 게 뭐가 있느냐”며 태영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떼먹으려 한다. 이때 “날짜 지난건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요”라고 호소하는 태영의 목소리는 현재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이 내몰리고 있는 차가운 현실을 대변한다. ⓒ명필름

지금 대한민국은 ‘청소년 알바 천국’이다.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물론, 겨울방학을 코앞에 둔 청소년 등 저마다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용돈을 벌기 위해, 생계를 위해 또는 꿈을 위해 노동시장에 나온 청소년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임금 채불, 폭언, 인격 무시에 시달린다. 특히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경우,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성희롱과 성차별까지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노동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아침에 실수로 몇 분 지각했는데 출근하자마다 관리자인 성인 남성에게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어요. 제가 잘못하긴 했지만, 학생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잖아요. 단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욕을 하고 폭행까지 하는 것이 옳은 건가요?” 

자연계열 고등학생인 염수정(가명·17)양은 과학캠프 참가비와 로봇 동아리 활동을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일터에서 ‘알바 노동자’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폭행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염양은 “내가 일했던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지난 11월 22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열린 ‘십대 여성들의 알바 이야기, 5126’ 토론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성희롱과 성차별, 급여 지연, 초과 수당 미지급 등 씁쓸한 노동 현실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신지민(가명·17)양도 고등학교 1학년 때 호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성희롱은 물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를 당하고, 8시간 넘게 일했는데도 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신양은 “그 호텔은 하루에 아르바이트생을 80명 정도 뽑는데 조금만 실수를 해도 ‘너 그냥 집에 가!’라고 바로 해고하고, 외모와 몸매를 지적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실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최근 1년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서울 거주 여성 청소년 5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48.3%가 최저임금 5210원보다 낮은 5126원의 평균 시급을 받고 있었다. 커피전문점의 평균 시급(3197원)이 가장 낮았고 패스트푸드점(4926원), 편의점(4993원), 웨딩·뷔페(5090원) 순이었다. 여성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경험한 부당 대우는 급여 지연(18.2%)이었다. 초과 수당 미지급(15.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0대 여성으로서 힘든 점은 남성에 비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57.2%), (성)폭력·폭언 위험에 노출(39.9%)돼 있으며 감정노동을 경험하는 경우(34.3%) 등이었다. 학교를 그만둔 여성 청소년의 10.8%는 아르바이트 도중 손님으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여고생 아르바이트생보다 4배가량 높은 수치다. 또 성희롱 피해자의 대부분인 70.4%는 참고 계속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나 청소년들이 성적 피해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처벌받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 주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10대 여성(15)의 실수를 지적하며 성추행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업주가 최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자퇴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홍하영(가명·18) 양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성차별과 나이 차별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수기 렌털 영업 사무실에서 일할 땐 관리자가 여성들에게 성희롱을 했는데, 나이가 가장 어린 내가 주요 표적이었다”면서 “지금은 쿡서비스 업체의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정해진 업무 외에도 커피를 타거나,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 화장실 청소 등을 여성이 도맡아 하고 있다”고 했다. 홍양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주로 채용하는 서비스업 사업장에서는 ‘어리고 말 잘 듣는’ 여성 청소년을 선호한다”면서 “노동 현장에서의 성차별과 나이 차별을 없애려면 정책적인 고민과 함께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청년유니온 청소년사업팀장은 “여성 청소년이 사업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항의하거나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문제 제기 이후 해당 사업장을 그만뒀을 때 이직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남성 청소년들은 배달 아르바이트나 택배 상하차와 같이 몸은 고되지만 상대적으로 시급이 높은 일자리가 있는 반면, 여성 청소년들은 판매, 카운터, 서비스 업종 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여성 청소년 알바와 사업주 사이에 강력한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의 노동을 일탈·비행 행위로 보는 시선 때문에 청소년 자신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제대로 된 노동 상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여성 청소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바꾸려면 “근로감독관을 확충하고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예방적 노동상담인 노동인권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특히 노동인권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등 교육을 확대해 청소년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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