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최고의 한 해 보내
상금 1000만원 독거노인 돕기에 기부
리듬체조 선수로선 리우올림픽이 마지막
은퇴 후 꿈나무 양성 등 새로운 길 꿈 꿔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한 분야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일까. 손연재(사진·연세대) 선수에겐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담담한 말투로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히 고르며 진지하게 답변하는 모습에서 ‘예쁘다’는 수식어보단 ‘속 깊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그는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확실한 목표를 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줄 알고, 20대 초반에 은퇴해야 하는 리듬체조 선수의 숙명에 대해선 “다른 운동선수보다는 조금 더 빨리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리듬체조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만큼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는 선배의 모습도 비쳤다. 

“어린 나이에 수상, 실감 안 나”

손연재 선수에게 2014년은 최고의 해였다. 세계선수권에서는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며 개인종합 4위를 기록했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단체전에서는 우리나라의 은메달을 이끌었다. 올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여성 체육인을 뽑는 2014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의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도 그의 몫이었다. 윤곡여성체육대상은 그동안 김연아, 이상화, 기보배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거쳐 간 상이다. 손연재 선수는 아직은 ‘올해 최고의 선수’라는 수식어가 잘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수상을 하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요.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한 팀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제가 좋은 성적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코치 선생님, 트레이너 선생님,  매니지먼트 등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지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죠.”

손연재 선수는 상패와 함께 주어지는 상금 1000만원을 ‘사단법인 어르신이 행복한 은빛 세상’에 기부해 독거노인 돕기에 쓰기로 했다. 그는 “저는 과분한 상을 받았고, 이미 열심히 하라는 충분한 동기부여도 얻었기 때문에 상금은 좋은 일에 쓰기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운동 외적인 관심, 여전히 ‘부담’

올해 손연재 선수의 삶의 초점은 모두 인천아시안게임에 맞춰져 있었다.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 일부러 많이 출전해 안무를 다듬고, 경험을 쌓았다. 손연재 선수는 “많은 시합에 출전하다 보니 경기마다 기복도 있었지만 그런 경험이 오히려 아시안게임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당연히 금메달을 따리라는 기대감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경기가 끝난 후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그는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면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리니까 고생하면서 열심히 훈련했던 것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훈련보다 힘들었던 것은 운동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었다. 시니어 무대에 들어서면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응원보다는 악플이 많았다. 그의 외모와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리면서 누리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악플도 관심의 일부분”이라고 여기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그 부분은 힘들다고 했다.

“(악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힘든 부분은 있어요. 경기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받다 보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다행히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이 경기 외적인 부분이 아닌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요정이라고? ‘절레절레’, 독종!

5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리듬체조를 시작한 손연재 선수는 세종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카바예바 같은 훌륭한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던 초등학생은 광장중 시절에는 국내 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실력을 키워갔다. 첫 시니어 무대였던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에서는 한국 최초로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늘 따라붙던 별명은 ‘리듬체조 요정’이었다. 하지만 손연재 선수는 이 별명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쑥스러운 듯했다. 사실 손연재 선수는 주위 사람들에겐 ‘독종’으로 불린다. 그는 16살이던 2010년부터 러시아 노보고르스크에서 훈련해왔다. 올해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이전까지 4년 동안은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며 새벽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끝나는 훈련을 마치면 식사부터 빨래, 학업까지 혼자 해결했다. 그는 휴가 기간 한국에서 광고를 찍으며 한 달에 수천 만원이 넘게 드는 러시아 전지훈련 비용을 충당했다. 그래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훈련받는 유럽 선수들과 어깨를 견주기 위해 더 많이 연습했고, 1년여 만에 훈련에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러시아어를 익혔다.  

손연재 선수에겐 “리듬체조 없는 인생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리듬체조는 인생 그 자체”다. 그가 15년간 오로지 리듬체조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즐거움’이었다. 다섯 살 때 리듬체조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재미가 없었다면 이제까지 할 수 없었을 것 같다”고 했다. 

“런던올림픽 이후에는 부담이 커지면서, 평소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 두 배로 힘들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운동을 즐기면서 하던 마음이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리우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즐기면서 운동할 생각이에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올림픽 메달 못 따도 실패한 인생 아냐”

손연재 선수는 2년 앞으로 다가온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길 소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메달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수 생활 동안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목표다. 사실상 리우 올림픽을 은퇴 전 마지막 시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리듬체조는 종목 특성상 선수 대부분이 20대 초반에 은퇴를 한다. 그도 스물두 살에 선수로서의 삶은 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건 모든 선수들의 꿈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같은 목표를 정해서 2년간 준비하겠죠. 하지만 저는 선수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제가 메달을 못 딴다고 해도 실패한 선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후회 없이 리듬체조 자체를 즐기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그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고 있다. 리듬체조와 관련된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꿈나무를 양성하는 지도자의 길도 생각하고 있다. 리듬체조와 관계없는 다른 길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리듬체조 분야에서 여러 가지 길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중이라고 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더 커 보였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다 보니 주위 분들 말씀도 많이 듣고 천천히 결정하고 싶어요.”

손연재 선수는 인터뷰를 마친 후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즌 중에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경기가 없는 기간에는 학생으로서 뚜렷한 목표를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리듬체조 선수가 아닌 손연재의 미래에도 기대를 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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