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늘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

것은 바로 피해자들이 발휘한 용기가 지켜보는 이들을 ‘성장시킨

다’는 생각이다.

이번 김명숙 씨 사건에서도 예외없이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이 넉달 여를 이 사건을 끌어오는 동안 때론 피해자 가

족을 비난하며 때론 사분오열을 겪으면서도 일관되게 견지해 온

‘인권의식’이 놀라웠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인권의식을 가르치겠는

가. 공동대책위 제1차 회의에 참석한 마을 대표 배순주 이장과 유재

화 부녀회장은 말했다. 가장 약한 자가 이렇게 짓밟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이런 인식이 결국 2백70여 마을

주민들 중 대부분의 성인인 1백50여 명을 가해자 공동고발에 참여시

킬 수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걱정은 있다. 가해자 H의 자식들이

“우리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들은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놓

고 있다는 것. 그래서 더욱 더 이 싸움에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솟는

다고 한다.

강릉 여성의전화가 보여준 자매애는 명숙이가 새 삶으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보수적인 지역색과 아직은 다소 불안한 입

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시민단체 못지않은 저력을 보여주었다. 명

숙이와 가족들을 설득해 고립무원의 태백시에서 명숙이를 쉼터로 옮

겼고 다시 안정적인 새 가정을 찾아주었다. 지난 10월 명숙이 사건

이 터지자마자 강릉에서 가장 크다는 강릉시여성단체협의회(회장 윤

양소)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릉지부(소장 윤양소)에 마을주민들이

지원을 호소했지만 일방적으로 무시당한 아픈 기억 때문에 여성단체

를 불신하던 마을 주민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강릉시여성단체협의회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릉지부는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공동대책위에 참여하지 못했다).

본지 편집국에서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갈등했던 부분은 명

숙이를 피해자로 커밍 아웃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느냐는 것이었

다. 559호에 게재된 명숙이의 초등학교 사진은 독자들 간에 이에 대

한 찬반양론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의 자매애가 향하

는 대상을 언제까지 익명의‘K’로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여성인권의 피해자이자 승리자로 부각됐

던 이시형 할머니나 진현숙 씨는 때론 인권침해 자체가 하나의 커다

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명숙이는 주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새 삶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것 자체가 그에겐 하나의 큰 실험일테고, 그를 지원하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명숙이와 헤어지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

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려왔다. 언젠가 그가 슬며시 눈길

을 피하기보다 눈과 눈을 마주 대하고 당당히 설 날이 반드시 와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