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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정말 그런 일을 전혀 몰랐나요? 왜 일찍부터 문제 제기를 안했나요?”

“애가 너무 어려 설마 그랬을까 싶었지요 뭐.”, “남의 일이라 참

견하기 싫었어요.”

1월 28일 강릉여성의전화에서 열린 남양1리 정신지체 여성 성폭행

사건 공동대책위 제1차 회의장 안은 공동대책위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마을 사람들의 분노로 가득찼다. 이제 이 사건은 한 여

성의 인권유린과 마을 사람들의 불안을 넘어 강릉 지역사회의 양심

지수를 재는 척도로 떠올랐다.

그간 K로 알려진 김명숙 씨(20)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 마을

남성들 5-7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기를 출산했다는 여성신문

559호 보도 이후 사건은 숨가쁘게 전개됐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

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20여 시민단체가 연대한

공동대책위가 꾸려졌고, 명숙 씨와 부모들에 대한 정신지체 판정 후

1월 22일엔 피해자의 모친도 성폭행한 혐의를 두어 주범인 75세의

H씨에 대한 피해자 가족의 고소가 다시 들어갔다(명숙 씨는 지난

연말 H와 합의를 본 상태이기에 더 이상의 고소가 불가능했다). 공

동대책위엔 사건이 발생한 옥계면 남양1리 주민들과 강릉 여성의전

화를 필두로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19개 지부, 한국성폭력상담소, 강

릉·동해·속초·원주·춘천 YWCA, 강릉 YMCA, 강릉 오성학교

어머니회, 영동정신지체부모회, 농아인협회 강릉지부, 강원 장애연맹,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강릉지부, 좋은친구선교회, 강릉종합사회복지관,

반부패 강릉연대, 참여자치 강릉연대, 강릉 경실련, 동해종합사회복

지관, 춘천·원주 여성민우회, 경남여성회 성·가족 상담소(제1회 진

주여성평등상 수상), 장애우권익연구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한가

정법률복지상담원이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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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공동대책위 제1차 회의에선

사건이 정당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시민사회가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란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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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여성의전화 관계자들. 왼쪽부터 황옥주자문위원,정순교 대표,

명숙,최은경 간사.

피해자와 부모가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음에 따라 피해자 가족의

고소와 함께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제3자 고발도 가능해져 마을 주민

1백50여 명과 공동대책위 참가단체들이 공동고발에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공동대책위는 빠른 시일 안에 강릉지청 앞에서 가해자에 대

한 즉각적인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시위와 가두 서명지지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들은 성폭력특별법 적용을 받는다고 해도 실제로는 장

애인에 대한 간음보다도 강간 입증이 훨씬 어려운만큼 법률적 대응

방침에 고심중이다. 실제로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되기 전인 96년 10

월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16세 소녀가 2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정신지체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정하지 않는 법원에

의해 사건이 기각당했다. 그간 명숙 씨를 돌보던 장애인 전문상담가

황옥주 강릉 여성의전화 자문위원은 회의에서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명숙 씨의 상태를 설명한 후 “이제 신체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지체도 항거불능의 상태임을 명확히 하는 판례가 나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에선, 판단능력이 없는 피해자 가족이

정상인인 H와 합의를 본 것은 무효이므로 다시 재고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어쨌든 대책위 관계자들은 법적 한계로 가해자들이

단 하루만 철창 신세를 진다 할지라도 가능한 그들의 범죄에 해당하

는 법적 처벌을 응당 받게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특히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은 “설령 부모가 아무리 똑똑하다 할지라

도 장애인인 아이를 가둬놓지 않는 한 악한 사람들에 의해 명숙이처

럼 성폭행을 당할 우려는 얼마든지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경시돼 왔던 장애인 인권문제, 특히 성폭행 문제를 사회에 호

소하자는 분위기다. 참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가

슴이 미어지고 답답하지만 “남양1리 주민들이 총대를 메고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 혼탁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며 참석한 마을 주민들을 아낌없이 격려

했다.

한편으론 명숙 씨가 좀 더 안정된 상태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태백시에서 1월 8일 아기를 출산한 후 10여 일 후에야

강릉시로 돌아와 쉼터에 기거하던 명숙 씨는 뜻하지 않은 신변노출

로 강릉 여성의전화 관계자의 집으로 피신했다. 이후 1월 27일 명숙

씨 사건을 다룬 강릉 MBC의 <강원세상>(연출 장진원 PD) 방송 후

장애인 공동체 가정을 운영하는 한 목사가 후원자로 나서서 면밀한

검토를 거쳐 현재 그 가정에서 한 달간 공동생활을 실험중이다. 이

름을 밝히길 거부하는 이 목사는 “장애를 입는 것은 벼랑 끝에 서

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숙이가 상처를 많이 받은 만큼 심리적 재활

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릉 = 박이 은경 기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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