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사회복지전공교수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사회복지전공교수
한국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급속한 기술 변동의 혜택으로 세계와의 물리적 거리는 좁아지고, 서로 가까워진 그만큼의 글로벌한 경쟁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만으로도 이곳 너머의 세상사를 훤하게 들여다보는가 하면, 플라스틱 카드만으로 다종다양한 세계의 상품을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구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상품만이 국경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국가 간 자유로운 인적 이동과 교류를 경험하고 있다. 가족원 가운데 취업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장기간 해외에서 체류하거나 국제결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음이 그것이다.

그동안의 국제결혼은 수적으로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주된 당사자가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한국인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소위 정상가족 밖의 이례적인 사건으로 간주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국제결혼은 급격히 증가했는데, 특히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마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다소 하향 정체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2002년에는 전체 결혼의 5%, 2004년 11.2%, 2005년에는 13.5%로 정점에 달한 바 있다. 2013년 현재 결혼이민자는 28만 명, 이들 자녀 19만 명을 포함하여 전체 다문화가족 수는 79만5000명으로 추산된다(여성가족부·2014).

이처럼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2006년 정부는 ‘다문화·다종족 사회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하고 ‘결혼이민자 사회통합안’을 서둘러 마련했으며, 이는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의 토대가 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이후 인지 및 귀화에 의한 한국인 간의 결혼을 포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출생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자(혼인귀화자)와 이들 자녀의 조기 적응을 돕기 위한 생활정보 제공과 교육지원,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 아동보육·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의 실시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동법에 근거한 다문화가족 지원의 중·장기 계획이 수립·추진돼 왔으며, 관련 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전국 217곳에서 운영 중에 있다. 이러한 지원정책은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높은 부합성을 보여줌으로써 안정적인 지원 인프라의 확대와 대다수 국민들로 하여금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수용케 하는 이중의 효과를 거두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의 급속한 확대는 지나치게 이들을 대상화하는 한편, 여타의 가족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기실 우리 사회의 배타적 문화는 이들의 어눌한 말씨나 행정적 편의에 따라 분류, 호명하는 ‘다문화 가족’을 ‘수혜자집단’ ‘정책대상자’로 구획함으로써 이들을 배제하는 듯한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문화’ 가족은 결코 지속적으로 사회적 지원이나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낯선 문화와 환경에 익숙해질 시간과 이에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준다면, 곧 건강한 시민의 역할을 수행할 당당한 우리 사회의 동반자인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자녀는 엄마, 아빠의 서로 다른 문화를 일상에서 접하며 생활해간다는 점에서 양국 문화의 접변자인 동시에 교류자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충분한 문화적 자극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보다도 문화적 융합을 통한 창의적인 문화생산이 가능한 미래 세대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는 초저출산이 10여 년째 지속되고 있으며, 좀처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970년 100만 명을 웃돌았던 한 해의 출생아는 이제 그 절반도 되지 않는 43만 명 내외에 불과하다. 이제 이 땅에 태어나는 아동들은 단순한 일가(一家)의 일원을 넘어 사회의 공공재로 간주될 만큼 소중한 사회적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 가운데 일방이 외국인, 혹은 부모가 한부모이거나 소득이 낮은 계층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이들이 누려야 할 기회와 선택을 제한하는 일은 곧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제한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든 아동과 청소년들은 마땅히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와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다문화가족의 자녀들 역시 그들의 다중적 문화 정체성을 근거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닌 미래 사회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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