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라고 기억된다. 성희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희
롱 하면 서울대 조교 우씨를 떠올린다. 1992년 문제제기가 되었고,
1998년이 돼서야 마무리가 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말이
다. 이 지난한 과정은 성희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매우 낮았
음을 말해 준다. 왜냐 하면 그 사건이 처음 제기되었을 당시 성희롱
이라는 단어조차도 생경했을 뿐 아니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성희
롱과 관련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기준조차 없었던 시
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가 막 시작된 현재, 성희롱은 너무나
쉽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되었다. 그 이유는 지난 해
성희롱 방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희롱
은 성차별의 한 형태로 인식되는 과정에 서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반, 즉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문제 제기된 성희롱 관
련 논의는 ‘한국의 성희롱 논쟁 1기’라 할 수 있으며, 현 2000년
은 ‘한국 성희롱 논쟁 2기’로 명명할 수 있다.
나는 성희롱 논쟁 1기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 당시 성희롱은 정말 어느 누구에게나 생소한 문제였다. 이
미 모든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었음에도 아무도 그
것을 문제로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 당연
히 감수해야 할 해프닝 정도로 성희롱을 이해하였다. 하지만 성희롱
방지법이 제정된 현 시점에서 성희롱에 대한 남녀 노동자들의 의식
은 과연 어떨까? 나는 역시 유사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지난 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30여 명의 사무직 여성 노동자와 노
동조합 간부, 여성단체 임원 등을 만나 성희롱과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나는 논쟁 1기와는 다른 무언가를, 즉 좀 더 변화 발전
한 여성들의 의식, 직장의 성문화를 포착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나
의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성희롱은 진지한 문제로서 직장에서 다
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첫째로, 성희롱을 성차별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여전히 남
녀간의 해프닝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
희롱을 단지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거나 가볍게 여성의 몸을 만지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성희롱을 ‘위계구조와 권력관계
에 의해서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강요 당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성희롱은 단지 가벼운 성적 농담, 육체적 접촉 뿐 아니라, 강제
되고 강요된 성관계, 강간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내가 인터뷰에서 만난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 다수가 ‘성희
롱’ 하면 가벼운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희롱을 심각
한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것은 성희롱과 관련한 법안, 교육
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성희롱 방지법의 실효성이 적극적으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는 이 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마치 성희롱 문제가 우리 사회에
서 없어지고 있는 듯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
방지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여성에게 유익한지, 그리고 만약 그들
이 성희롱의 피해자가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 이는 방지법에서 제시하는 성희롱과 관련한 교육이 구체적으
로 내용성 있는 교육으로 진행되지 못하거나, 아예 교육조차 시행되
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대기업의 경우 성희롱 관련 교육을 실시
하기도 했지만, 형식적으로 진행되었을 뿐이다. 성희롱과 관련한 비
디오 상영이 그 예이다. 그것도 주로 점심시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어렵게 했다. 그리고 그 비디오를 본 남녀 모
두의 반응은 모두 ‘우습다, 재밌었다’ 등이었지, 정말 성희롱이 심
각한 문제이며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
다.
하지만 성희롱 방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성희롱과
관련한 교육이 존재한다는 것은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 부처의
노력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우선 각 사업장 별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교육의 구체적
인 내용을 관할하고 점검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
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아무리 형식적이라 하더라도 교육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설될 ‘여성부’가
성희롱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좀 더 내용성 있는 교육을 통해 효
과를 거둘 필요가 있다.
또한 성희롱은 단지 법안의 통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수 없
다. 법안의 통과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소한의 원칙을 제시할 뿐
이다.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
문제는 그 사회의 성문화이다. 즉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보기 위해
서는 그 직장의 문화, 성문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지 성차별 문화로서의 직장의 성문화를 강조하였다. 하지
만, 나는 성희롱 문제를 좀 더 세밀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성차별
문화’(the gendered culture)와 ‘이성애 문화’(the heterosexual
culture)가 어떻게 한국의 직장 내 성문화로 구성되는지를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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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영국 University of York 여성학과 박사과정.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순응과 저항에 관한 일 연구'(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
1995)로 석사학위 취득.
현재는 직장 내 성문화와 성희롱의 관련성 그리고 성희롱 방지법의
실효성에 관해서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