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용은 높아지는데 소득은 낮아
‘좋은’ 일자리 줄어들고 빚만 쌓여
청년네트워크 통해 사회적 권리 찾아야

 

지난 4일 서울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과 참여연대가 함께 주최한 청년문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4일 서울 연세대학교 연희관에서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과 참여연대가 함께 주최한 청년문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는 게) 진짜 힘든데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내가 못나서 힘든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을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그 속에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구나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청년 주거 협동조합인 ‘민달팽이 유니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시내 고시원의 3.3㎡(1평)당 월세 평균 가격은 약 15만2000원. 이는 고급 아파트의 상징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2차)의 평당 임대료 약 11만8000원보다 훨씬 비싼 금액이다. 원룸 임대료 또한 3.3㎡당 10만8000원으로 별반 큰 차이가 없다. 관리비도 마찬가지다. 원룸의 월평균 관리비(339명 원룸 관리비 실태조사·2014년 8월)는 5만9148원으로 3.3㎡당 관리비는 1만876원이다. 이는 아파트 관리비(서울시공동주택통합정보마당) 5613원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좁은 고시원과 원룸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의 다수는 청년들.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는 등록금 탓에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하는 많은 청년의 삶은 팍팍하다.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이라는 부모님 세대에는 평범했던 그 바람이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는 사치다.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대기업과 공무원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고시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도 아니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면서 ‘알바’에 매진하고 있다. 연애도 결혼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삼포세대’는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주거, 일자리, 부채 등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서로의 현실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4일 서울 연세대 연희관에서는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등 청년 단체들과 참여연대가 함께 주최한 청년문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불평등 속의 청년의 삶 변화는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이번 공개 토론회는 이번 서울을 시작으로 전주와 대구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다.

‘청년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의 당사자 연대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임경지 팀장은 주거빈곤층으로 전락한 청년들의 실상을 이야기했다. 국토교통부의 2012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1인 청년가구의 경우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비율이 31.4%, 40% 이상은 10.7%,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에 쏟아붓는 비율도 1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의 1인 청년가구 주거빈곤율은 2010년 기준 36.3%로 전국 가구 주거빈곤율 14.8%에 비해 월등히 높게 조사됐다.

학업과 취업을 위해 대도시인 서울로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도 9.5%에 불과해 임 팀장은 “학교가 공공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임 팀장은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서는 20년 넘게 숨 안 쉬고 일만 해야 한다.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또 “청년 주거 문제를 드러내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적 필요를 사회적 권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소득은 낮은데 삶의 비용은 높고, 그 격차를 빚으로 채워가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위원장은 엄청난 임금격차 때문에 ‘평범한’ 삶을 위해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입사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일자리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청년들이 절대적으로 눈이 높아서라고 볼 수 없다”며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환경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는 그것이 박탈당했을 때 우리 사회에 어떤 위기가 오는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윤홍식 인하대학교 행정학과·사회학과 교수는 ‘평화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토론회에 참여한 윤홍식 인하대학교 행정학과·사회학과 교수는 ‘평화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토론회에 참여한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사회학과 교수는 ‘평화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윤 교수는 “시장이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며 “유럽의 국가들은 신규 일자리의 90%를 중앙과 지방정부가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 국가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 조직화된 시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형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청년들이 내가 바꿔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겨를이나 기회가 있었나?”라며 “사회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세대라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는 만들어진 담론일 뿐”이라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지금부터라도 모여서 이야기 해야 한다”며 “다양한 형태의 소모임과 집단적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김남희 변호사(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도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바꿀 수 있을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수 위원장은 “청년들이 개인의 성취는 익숙한데 복지나 노동 등 공동의 문제에 함께 싸워 승리한 집단 경험이 없다”며 “작더라도 이겨보는 경험을 해보자. 알바하다가 주휴수당 떼이면 받도록 하는 게 이기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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