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성과에 걸맞지 않은 여러 부문의 성차별을 개선하지 않으면
실질적 성 평등은 이룰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여성신문

스위스 민간 싱크탱크인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교육’ ‘건강’ ‘정치 참여’ 등 4개 부문 성별 격차를 수치화해 ‘성 격차 지수’(GGI: Gender Gap Index)를 발표한다. 지난 10월 27일에 발표된 WEF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42개국 중 117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이런 수치는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한국은 중국(87위), 일본(104위), 캄보디아(108위), 네팔(112위), 쿠웨이트(113위), 인도(114위)보다도 못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경제 활동과 정치 의사 결정 부문에서 한국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WEF 성평등프로그램 책임자인 사디아 자히디는 “지난 10년 간 성 평등 문제가 진전을 거듭했고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와 노동시장에 참여했다”며 “정치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지난 9년 전에 비해 26%가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장관의 수는 50% 더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가령, 박근혜 정부 내각에 여성부 장관을 제외하고 단 한 명의 여성 장관도 없다. 과거 정부와 비교해 오히려 여성 장관이 줄어들었다. 국제의원연맹(IPU)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89개국 중에서 88위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비율이 미세하게 증가했지만 국제적인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이한 한국의 성 격차 지수 순위가 매년 하락하는 것도 참으로 모순적이고 충격적이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 104위를 차지했지만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에는 111위를 기록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6계단 하락했다. 여하튼 여성 대통령 시대에 남녀평등 지수가 세계 최하위이고 오히려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것이다. 정부가 노력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지수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일부 부당하게 측정된 부분이 있다”면서 “이런 오류는 측정 기관들과 상의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EF 성 격차 지수는 우리 사회의 성 평등 제고를 위해 많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여성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올해 WEF 보고서에서 한국은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부문이 가장 낮은 124위를 기록했다. 하위 항목으로는 ‘동일 직종 임금 격차’가 125위로 가장 낮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동등한 일을 하는데 남녀 간에 임금 격차가 큰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국회에서 행한 시정 연설에서 “우리 경제는 여전히 위기”이며 “저성장, 저물가, 엔저라는 신3저의 도전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고,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통상 경제가 어려워지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피해를 본다. 지난 97년 IMF 위기 때에서 보듯이 여성은 남성보다 고용과 임금에서 절대적으로 취약하게 된다. 여성이 남성보다 쉽게 해고되고 정규직 신분이 비정규직으로 추락하는 불이익을 당한다.

지난 10월 28일 통계청이 내놓은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이 600만을 넘어섰다. 문제는 이런 비정규직의 6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비정규직 비중을 줄이고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약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을 해소하고, 임금을 포함한 근로 조건의 차별을 줄여 나가지 않으면 내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또 하락할지 모른다.

여하튼 정부는 “경제적 성과에 걸맞지 않은 여러 부문의 성차별을 개선하지 않으면 실질적 성 평등은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고, 공무원 연금도 개혁하고, 규제 철폐에도 나서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정부는 국민들이 ‘준비된 여성 대통령’의 진면목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 행복한 시대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양성평등 제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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