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대한 국회의 걱정은 모두 기우
우리 법이 아직 약자에 대해 세밀한 보호 못해
남녀 법관 모두 성인지감수성 위한 전문적 교육 필요

 

“제가 여성만을 위해 일했던 것이 아니라서 이 상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여성들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여성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상의 취지를 넓게 생각하시고 주시는 것 같아 감사히 받기로 했습니다.”

헌정 사상 첫 여성대법관이라는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최근에는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당시 발의했던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제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법명으로 더 자주 거론되는 김영란 전 대법관. 그는 한국YWCA연합회가 선정한 제12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수상에 대해 거듭 “대상 받을 군번이 아니”라며 몸을 낮췄다.

학생 대상 강연을 제외하고는 대외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언론과의 접촉도 꺼리는 그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서강대 캠퍼스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학교에서 1개 강의만 맡고 있다는 그는 “진정한 자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여 있는 것은 이것 딱 하나밖에 없다”며 근황을 이야기했다. 2012년 남편 강지원 변호사의 대선 출마로 재직 중이던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은 후 별다른 활동이 없는 그에 대해 ‘소중한 인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 섞인 말도 들려온다.

“그동안 했던 판결들에 대해 책을 쓰고 있어요.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한 달에 너덧 번 정도 학생 대상 강연을 하고 있고요. 행사 참여 같은 것은 요청은 많이 받고 있는데 마땅히 어디에는 가고, 어디에는 안 가고 할 수 없어 모두 가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에 대한 우려는 모두 기우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은 2012년 8월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입법 예고한 것으로 공직자가 직무상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며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우리나라 부패방지나 예방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 상태”라며 “그 선진국의 벽이라는 게 넘기가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우리는 과거 농경시대 마을 공동체에서 주로 인적 네트워크로 문제를 해결했었어요. 이제는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야겠다 생각했죠. 그러기 위해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의 불공정을 없애야 합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고리를 끊어야죠.”

그는 소위 ‘엘리트 카르텔 사회’의 그 고리를 끊기 위해 돈이 오가지 않는 청탁, 청탁이 오가지 않는 돈, 공직을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이용하는 것 모두를 규제하는 ‘김영란법’을 만들었다. 국민들과 정치권,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높은 호응 속에 조속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이 법안은 입법 예고 이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도 이 법의 조속한 통과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김영란법은 여야 모두의 천대 속에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이 법을 둘러싼 우려와 논란들에 대해 “모두 기우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며 논쟁 지점들에 대해 반박했다.

“사립학교나 언론기관까지 법의 적용대상을 넓히는 문제는 명확한 기준을 정해놓고 대상기관을 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국가 보조금을 어느 정도 사용하느냐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또 부정청탁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은 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정청탁에 대해 ‘청원법’이나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민원이나 국민의 청원은 전부 예외로 되어 있어요.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무원들의 제도 개선도 예외로 되어 있고, 그 밖의 경우도 대통령령으로 예외를 더 자세히 만들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규제 부분도 구체적인 직무에 관해 담당 공무원과 이해관계가 있을 때, 그 구체적인 직무만을 맡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일반적인 직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전문성으로만 승부해야 했던 ‘최초의 여성대법관’

2004년 8월 헌정 사상 첫 여성 대법관의 탄생은 여성계 입장에서는 오랜 염원이 이뤄진 것이었지만 법조계나 김 전 대법관 스스로에게는 예상치 못한 파격 인사였다. 사법연수원 11기인 그가 대법관 임명 당시 만 48세의 젊은 여성으로 연수원 2, 3기 출신들이 거론되던 대법관 자리에 60여 명의 선배들을 제치고 임명됐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적 요구 때문에 제가 된 것 같습니다. 다양성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죠. 저보다 선배님들이 많으셨으니까요.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어깨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할 자리라 오로지 열심히 할 뿐 다른 방법은 없었죠. 최초라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자리라 그 사람이 실패하면 당분간은 다양성을 위해 소수자를 뽑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책임감이 굉장했죠.”

다행히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있었지만 대법관으로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최초의, 또 단 한 명의 젊은 여성 대법관은 다른 대법관들에게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지만 그의 존재로 인해 여성 관련 사건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전원합의라고 전 대법관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제가 좀 주춤하면 오히려 격려해 주시면서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초기 전문가 그룹은 너무나 소수이기 때문에 오히려 보호를 받는 측면이 있어요. 물론 한계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요즘 여성들이 더 힘든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기 소수자들이 자기가 잘나서 무엇인가 된 줄 알고 사실 자기 뒤를 받쳐 주는 소수자 그룹의 존재를 잊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활동했습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 이후 전수안, 박보영, 김소영 등 여성 대법관이 잇달아 탄생하고 있고, 사법시험은 물론 여성 판·검사의 숫자도 ‘여풍’이라 불릴 만큼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의 여성 관련 제도들이 개선·보완되고는 있지만 법조계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영역으로 분류된다. 김 전 대법관도 “변화는 있지만 더디고 의식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변화가 없지는 않습니다. 육아휴직제도나 영장 당직, 즉결 당직에서 임신한 여성들을 배려해 준다던가 하는 제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때는 출산하는 날까지 근무를 했어요. 그래야 출산 후 출산 휴가 2달을 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휴가를 한 달도 채 쓰지 못하고 2~3주 만에 출근하는 판사들이 있었어요. 젊은 여성 판사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 수에 비례해 고위직 여성들이 늘어난 것은 아니거든요. 그들이 고위직이 올라가면 조금 더 나아지겠죠.”

김 전 대법관은 여성의 수적 증가뿐만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전문화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등의 사건에서 여성이라는 약자에 대해서 우리 법이 세밀한 보호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압적인 상황을 오랫동안 견뎌온 사람의 심리 등에 대한 고려가 아직 법에는 잘 없어요. 심리학적 데이터 같은 걸 많이 생산해 법률가들의 의식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판검사들에게 전문화된 교육을 실시해야죠. 여성들도 교육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더 완고할 수 있어요.”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권리 위해 노력해”

“살기가 너무 빠듯하지만 여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잘 적용해 사회에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잊으면 곤란합니다. 살기 힘들다고 해서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가치가 그런 가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김 전 대법관은 “남성, 여성보다 젠더 관점을 가진 판사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며 성인지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전문직 여성 그룹인 여성 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여성적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여자 판사들 중에도 이제는 남녀가 동등한데 남녀를 따지는 게 이상하다고 하는 이들이 일부 있습니다. 또 아이 낳고 판사 노릇 하기도 빠듯한데 여성적 가치 같은 것 까지 생각하기 버겁다, 제도적 차별만 없게 해 주면 아무 불만 없이 ‘마미 트랙(Mommy track)’ 속에서 살아갈 테다라는 그룹이 있어요. 그리고 그래도 여전히 여성으로서 전문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힘들다면서 우리가 이것을 고쳐 나가기 위해 공부하면서 사회적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게 옳다고 하는 다수를 차지하는 그룹이 있어요. 앞의 두 그룹도 너무 힘이 드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렇지만 힘든 당사자가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생각을 해 주겠냐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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