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철학과 동문들이 기억하는 ‘故 신해철’
서강대 철학과 동문들이 기억하는 ‘故 신해철’
  • 이세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10.29 02:15
  • 수정 2018-01-30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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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좌)의 솔로 활동 시절 모습(우) ⓒ뉴시스·여성신문/한국음반
27일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좌)의 솔로 활동 시절 모습(우) ⓒ뉴시스·여성신문/한국음반

설마 했는데, 그가 떠났다. 영원할 것 같던 ‘마왕’ 신해철은 46세의 나이로 의식 불명 엿새만인 27일 저녁 별세했다. 가족, 동료, 팬들은 물론 그의 음악을 사랑한 모든 이들이 비통함에 잠겼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그의 음악과 함께 시대를 넘어 온 '3040세대'의 슬픔은 더욱 컸다. 

신해철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87학번이다. 2학년이던 1988년, ‘무한궤도'를 이끌고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스무살에 스타가 됐지만 그는 꼬박꼬박 수업을 듣고 과방에서 기타 치며 학생들과 어울리던 '평범한 학생'이기도 했다. 결국 신해철은 학업을 포기하고 음악의 길을 걸었다. 짧은 대학 생활이었지만, 신해철과 함께 캠퍼스를 누볐던 이들은 그에 관한 특별한 추억과 기억을 품고 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한다. 

튀는 허세남?..."알고 보면 정 많고 사회 비판 의식이 날카로웠다"

1987년 1학기. 신해철을 처음 본 문화평론가 김성수(서강대 철학 86) 씨는 ‘요주의 인물’이라 판단했다. “정말 튀었죠. 파마 머리에, 키는 작은데 왕잠자리 선글라스에 긴 코트를 걸치고, 등에는 기타를 메고 다녔으니까요. 근데 잘 어울렸어요. 여자친구가 ‘신해철 멋있다’ 길래 짜증도 좀 났죠”.

 

밴드 무한궤도 멤버들 중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신해철
밴드 '무한궤도' 멤버들 중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신해철 ⓒ한국음반

신해철은 철학 공부에 빠져들었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 스스로 "전공으로서의 철학은 1학년 초에 포기했다"고 한 적도 있다. 단지 '철학과 티'를 내려고 했는지 자신을 "'신인간 해방 철학'의 신해철입니다" 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대학 동문들은 신해철이 단순한 '허세남'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가 "누구와도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눴고, 직설적이지만 인정이 많았다"고 전했다. 재학 시절 신해철은 과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다른 학우들과도 잘 어울렸다. 철학과 노래패가 교내 축제 공연을 하게 되자 곡을 써 주고 자신의 값비싼 악기들을 빌려 주기도 했다. 

신해철의 1년 후배인 표정훈(서강대 철학 88)씨가 기억하는 신해철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80년대 독재정권에 함께 저항했던 동지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교련 과목과 전방입소훈련교육(대학생들을 실제 전방 부대에 투입시키는 훈련)을 반드시 이수해야 했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군에 편입시켜 청춘의 비판 의식을 말살시키려 한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신해철도 그 가운데 있었다. "잠자리 안경을 쓰고, 시위 피켓을 들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죠". 김 씨는 덧붙였다. "처음엔 특이하게 여겼는데 볼수록 그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아침이슬 '락 버전' 등 음악적 열정과 실험 ...‘태권브이 주제가’ 같던 노래로 대상

 

신해철은 밴드 무한궤도로 제 12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신해철은 밴드 '무한궤도'로 제 12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MBC 방송 캡쳐

수업이 없을 때면 신해철은 으레 과방을 찾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책상에 발을 올려놓은 채 기타를 쳤다.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당시 대학가에는 민중가요가 일반적이었다. 신해철은 좀 달랐다. 대중가요를 연주했고, '아침이슬' 등 인기 민중가요를 락 버전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동기였던 김종승(서강대 철학 87)씨를 비롯해 과방에 모인 학우들은 "들어보니 뭔가 세련되고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해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 '아기천사'라는 밴드로 나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표정훈 씨는 “떨어졌다면서도 '이제 어떻게 하면 가요제에서 수상할 수 있는지 알았다'고 하더군요”라며 당시를 기억했다.  

어느 날 신해철은 가요제에 나갈 곡이라며 데모 테이프를 가져왔다. 학우들에게 들려줬는데, 좀 생소했다. 한 동기는 “들어보니 꼭 태권브이 주제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해철은 과방 칠판에 "나 대학가요제 대상 먹으러 간다" 라는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밴드 '무한궤도'를 이끌고 그해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다. 태권브이 주제가 같던 데모 테이프의 곡은 신해철을 세상에 알린 '그대에게'였다.

“그와 함께한 추억과 음악은 영원히 남을 것”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신해철은 학업과 음악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표정훈 씨는 “(신해철)선배가 머리가 좋아서 벼락치기를 해도 학점은 잘 나오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신해철은 1990년부터 사실상 솔로 활동에 전념,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당시 학과장이었던 박종대 전 서강대 교수는 "신해철은 자퇴하기 전까지 여러 학생들과 교수, 조교들의 지지 속에서 꾸준히 음악적 시도를 해 나갔다"고 말했다. 신해철이 낸 '비트겐슈타인 프로젝트' 앨범에는 '서강대 교수, 조교수님들에게 감사드린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고 신해철이 남긴 트윗 ⓒ신해철 트위터 캡쳐
고 신해철이 남긴 트윗 ⓒ신해철 트위터 캡쳐

서강대 동문들과 교수들은 “신해철이 좋은 세상으로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하다”고 전했다. "신해철을 참 존경했다"고 밝힌 한 후배는 “사람은 갔지만 음악과 추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신해철의 대학 동문들은 29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에 차려진 고인의 빈소를 찾아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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