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중국 방문 중 개헌론과 관련,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개헌 불가피론’을 제기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일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일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치적 파장이 커지자 김 대표는 바로 다음 날 “나의 불찰이고 실수였다”면서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김 대표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개헌 논란이 청와대가 느닷없이 김 대표 발언에 대해 이례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 취임 100일을 맞은 21일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는 생각을 안 한다”며 김 대표의 언행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의 이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의 발언에 박근혜 대통령이 격앙돼 있으며,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김 대표 취임 이후 청와대가 나서 여당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은 단순한 반응을 넘어 김무성 체제 흔들기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함의와 복선이 깔려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과연 이런 해석과 관측이 타당할까?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통해 김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은 점, 지난 19일 김 대표가 참석한 당·정·청 비공개 모임에서 김 대표 개헌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는 점, 야당은 김 대표가 청와대에서 항의하거나 압력을 가해 물러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대통령이 국회 차원의 논의를 막는 건 월권이고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표의 사과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면서 김 대표가 치고 빠지는 식의 고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내놓았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연내에 처리하려면 김무성 대표의 협력을 받아야 하는데 굳이 청와대에서 갈등 국면을 조장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한편, 정치 경륜이 많은 김무성 대표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현 시점에서 도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모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의 역습에 대해 무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의 의도는 김무성 대표에 대한 경고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야당에 대한 대응책일수도 있다.

정기국회 이후 개헌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청와대가 김 대표에게 어떤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 또는 집권당 차기 유력 대권 후보와의 갈등은 언제나 존재했다. 가령,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선후보는 김대중 후보 비자금 수사를 둘러싸고 충돌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은 대선 공약이었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2004년 6월 14일에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 백지화에 반발하면서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한 말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미디어법과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격하게 대립했다. 박 전대표는 본회의장에서 자신이 직접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 발언까지 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집권당의 주류도 아닌 비주류 대표가 대통령과 대립하고 충돌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치 정상화를 위해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만나 개헌론, 공무원연금 개혁, 세월호법 제정, 경제 활성화 등의 국가 어젠다를 중심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 자리에서 협조를 얻을 것은 협조를 얻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통 큰 국정 운영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특히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불필요한 당·청 갈등을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최근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이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지, 밥만 축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차원에서 새누리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용기 있는 결단인지, 아니면 무기력함의 호소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모두 현재 만연된 정치 혐오와 국회 불신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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