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여성 퇴직자분들을 모시고 심층 면접을 한 적이 있다. ‘여성의 결혼은 곧 퇴직’으로 연결되던 상황에서 퇴직 전까지 취업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묻는 자리였다. 

면접 결과, 여성 퇴직자들은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 속에서 ‘절대 고독’을 느끼면서도 직업에 올인할 수 있는 ‘남자’처럼 살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배경에는 시부모와 친정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즉, 여성 퇴직자들은 시부모와 친정부모라는 사적인 관계망을 이용해 직업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직업 중심적인 삶이 여성 차별적인 직장 문화 속에서도 퇴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이분들의 노력 덕분에 여성들이 개인 차원의 생존 전략을 구사하지 않아도 직업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08년에 ‘가족친화사회환경의 조성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시행되면서 출산, 양육과 관련된 휴직, 휴가제도가 개선됐다.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시기에는 단축근무, 집중근로제를 할 수 있는 등 유연근무제도도 대폭 도입됐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진화를 무색하게 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현주 의원이 리서치 기관에 의뢰해 경력단절 여성 2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1년 이상 사용한 여성은 10.6%에 불과하며,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한 여성도 35.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대다수인 76.4%가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퇴직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일·가정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가족친화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러한 제도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실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일·가정 균형을 위한 제도 도입은 여성 취업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 직장 내 일·가정 균형을 위한 가족친화 제도와 취업 여성의 자녀 양육 스트레스 및 일·가족 갈등과의 관련성을 살펴본 연구들을 보면, 제도의 유무도 중요하지만, 제도의 유무보다는 실제 이러한 제도들을 활용한 경험이 자녀 양육 스트레스나 가족 내 갈등 수준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가족 친화적 조직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일·가정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가족친화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제도를 근로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조성돼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이 가족 친화적 사회환경으로 진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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