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지원금 확대 등 기업 부담 축소에 초점
저임금·과도한 야근 등 열악한 현실부터 바뀌어야

 

출근하는 여성 보좌진이 국회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여성고용 후속·보완 대책’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는 정원에 여유가 있는 정부청사 어린이집, 공공기관의 직장 어린이집 등 공공부문의 직장 어린이집에 지역 주민 자녀들도 다닐 수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출근하는 여성 보좌진이 국회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여성고용 후속·보완 대책’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는 정원에 여유가 있는 정부청사 어린이집, 공공기관의 직장 어린이집 등 공공부문의 직장 어린이집에 지역 주민 자녀들도 다닐 수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보육·돌봄 서비스를 맞벌이 부부 중심으로 개편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기존 대책을 보완하거나 사업주 부담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실효성이 낮아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5일 발표된 ‘여성고용 후속·보완 대책’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후속·보완 대책’의 핵심은 보육체계와 돌봄서비스를 ‘맞벌이’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실수요자가 필요할 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 대상을 재설정하고, 이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특히 이번 대책은 정책 수요자의 인지도와 현장 체감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정부가 지난해부터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지만 현장 체감도는 낮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4월 남녀 11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국민의견조사’ 결과, 정책 인지도는 34.9%에 그쳤다. 이 때문에 대책은 보다 현실성 있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 정책 집행도를 높이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여성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정책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 맞벌이 부모가 정시 퇴근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 최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책 역시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과 경력유지를 위한 근본 대책보다는 기존 정책을 보완하는 수준인 탓에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아이돌봄 지원사업이다. 기존 초등학생과 유아(2~12세)를 대상으로 하는 시간제돌봄이 영아종일제(0~1세)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개편된다. 정부는 영아종일제 활성화를 위해 돌보미 양성교육을 이수한 돌보미를 영아종일제에 우선 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돌보미들은 이번 개편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유아들을 돌보는 것보다 12개월 이하 영아를 하루 종일 돌보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더 크지만, 시간당 급여 등 처우는 똑같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가 지난 2월 내놓은 ‘여성 경력유지 지원방안’에 대해 당시 재계는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기업 부담을 가중시켜 여성 고용을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를 활용하거나 비정규직 여성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 지급하는 사업주 지원금을 10만~40만원씩 올렸다.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의 경우, 활용도가 매우 낮다. 올해 9월 말 기준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 이용자 수는 793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의 1% 수준에 그쳤다. 이는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단축제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이 회사 눈치를 보느라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범부처적으로 시간제 확대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골자인 ‘시간제 활성화 보완 대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제 노동자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전일제 전환 대책 등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가 무리하게 시간제일자리를 발굴하려다가 어렵게 되자, 전일제 공무원을 시간제공무원으로 바꿔버리는 최악의 대책까지 내놓고 있다”며 “고용의 질과 공공행정의 질 모두를 떨어뜨려 결국 일반 국민에게도 그 피해가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당근’으로 내놓은 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공무원연금 적용에 대해서도 “과연 불안한 자리와 저임금을 20년 이상 버티며 반토막짜리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책에 현장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2월 기존 대책이 발표됐을 때 여러 차례 경력`단절 예방과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저임금과 과도한 야근, 성차별적인 노동환경 등 열악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며 “근본적인 개선 없이는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도 논평을 통해 “정부가 만들어야 할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 확산이 아니라 성별 임금격차의 해소와 가처분 소득의 향상”이라며 “이를 위해 여성 비정규직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미국과 영국이 시행하듯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정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업이 쌓아놓고 있는 유보금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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