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낙구/민주노총 교선실장

한국이 사실상 IMF를 졸업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식

이다. IMF 첫해 -5.7%까지 곤두박질 친 경제가 올해엔 6%대로 성

장하고, 한 때 10%에 육박하던 실업률도 4%대로 떨어졌으며, 구제

금융 직후 3백선 아래로 떨어졌던 주가는 1천 포인트를 넘어섰다.

97년 말 39억 달러밖에 남지 않아 온 국민의 가슴을 오그라들게 했

던 외환 보유고도 작년 말 7백억 달러를 넘었고, 이에 힘입어 1인당

국민소득도 IMF 이전 상태인 1만1천 달러를 회복할 전망이라 한다.

하지만 IMF를 졸업했다는 얘기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왜일

까? 이런저런 경제관련 수치들은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이

끌고 있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과연 IMF를 졸업했는가? 극소수 부

유층을 빼고 대다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지난 2년 동안 본전도 못

건지고 나아질 줄 모르고 있다.

1천3백만 노동자들은 임금삭감은 물론 실업대란으로 아직도 고통받

고 있다. 실업률이 줄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서 고용

의 질은 더 악화되고 있다. 여성은 정리해고의 우선 순위가 되었고

비정규직의 주역으로 전락하였다.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넘어선다지

만 중산층은 무너져 버렸고,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빈민이 1천만명을

넘어섰다. UR에 이어 IMF가 할퀴고 간 농촌은 아이들 울음소리 그

친 지 오래이며, 농가부채로 농촌공동체 자체가 함께 파산 당하는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IMF 2년은 한국사회를 20%의 극소수 부유층과 80%의 대다수 빈

곤층이 양극으로 나뉜 이른바 ‘20대 80’의 극심한 불평등 사회로

만들어 버렸다. IMF를 졸업했다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골병이

들어 IMF 이전보다 훨씬 휘청거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한마

디로 정부가 20%를 위해 80%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슬픔을 나눠 갖게도 기쁨을 나눠주려고도 하지 않았

다. 물론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지목됐던 재벌체제도 많

이 변한 게 사실이다. 5대재벌 중 대우가 무너졌고, 6대 이하 30대

재벌 중 쌍용, 고합, 기아 등 14개가 해체됐거나 해체되고 있는 중이

다. 하지만 재벌의 숫자는 줄었지만 5대재벌은 자산을 훨씬 불리고

주식시가 총액을 2년 전보다 4∼5배씩 늘리며 경제장악력을 오히려

높였다. 서민들이 견디기 힘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극소수 재벌과

부유층은 재산을 더 불리고 옷로비를 벌이며 더 살쪄온 게 지난 2년

이었다.

최근 경기가 회복되자 80% 대다수 서민들은 이제 좀 나아지려나

기대해보지만 20% 부유층의 반응은 ‘천만의 말씀’이다. 20% 부

유층을 대변하는 정부는 ‘경제가 살아났으니 IMF 2년 동안 빼앗긴

생존권을 원상회복 해달라’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요구에 대해 ‘이

제 경제가 막 살아나려고 하는데 지나친 요구로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싸늘하게 나오고 있다. 대신 경기회복의 단 꿀을 독차

지한 부유층들은 고가 수입품을 즐기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이 생산적 복지를 선언하였고 올 10월부터 국민기초생

활보장법을 시행할 것이니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

만 생산적 복지 정책을 뒷받침할 예산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작년에

비해 올해 전체 예산은 큰 폭으로 늘리면서도 실업·고용 등 사회보

장예산은 오히려 3분의 2 수준으로 깎았고, 공공근로 예산도 절반으

로 줄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1천만 빈민 다섯 중

한 사람도 혜택을 못 받는 생활보호대상자수도 오히려 작년보다 40

만명 이상 적은 1백53만여명으로 줄었다. 복지부의 생활보호와 기초

생활보장 관련 예산이 4% 넘게 줄어든 까닭이다.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20%의 부자를 위해 80%의 가난한 사람을 울

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서, 80%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두

텁게 하는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 건설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IMF의 슬픔에서 졸업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