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계, 여자 선배들의 수많은 눈물 있었을 것”
지휘자에게 중요한 건 리더십과 인격
올가을엔 ‘브람스 심포니’ 4번 추천

 

성시연(37)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은 음악을 최초보다 오래와 끝까지가는 지휘자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성시연(37)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은 음악을 최초보다 '오래'와 '끝까지'가는 지휘자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클래식 하면 옷매무새부터 갖춰야 할 것 같다. 잔디밭에 누워서, 혹은 창고 같은 클럽에서의 클래식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성시연(37)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육중한 방음문, 정해진 좌석이 음악을 더 즐기도록 도울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라고 말했다.

10월 8일 성 단장과의 만남은 급히 성사됐다. 5일부터 7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 오케스트라 주간(Asia Orchestra Week)’에 단원들과 참가하고 그 이튿날이었다. 지난해 12월 경기필하모닉 단장이 된 뒤 프리뷰콘서트에 이어 숨 가쁘게 달려 온 일정이지만 피곤한 기색은 느낄 수 없었다. 올해 신진여성문화인상까지 수상하자 성 단장은 “새로운 자극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공연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청중의 수준이 높구나, 역시 클래식 선진국이구나 느끼고 왔다”고 말했다. 청중의 수준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우리 연주가 좀 부족한 연주였다고 해도, 관객들이 즐기는 모습을 봤다”며 “일본처럼 좋은 공연이 많고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찾아오는 나라라면 약간 부족한 연주를 보고 후반부에 나가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다른 팀이 연주할 때 제가 후반부에 둘러보니까 한 사람도 가지 않고 끝까지 남았고 끝나고 나서도 무한대의 끊이지 않는 커튼콜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올해 일본 아시아 오케스트라 주간에는 한국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본 나고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트남 호치민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참여했다.

인터뷰 이틀 뒤에는 경기도 문화의전당에서 열린 ‘경기도립예술단 페스티벌’에서 연주가 예정돼 있어 일정이 타이트했다. 단원들에게 어떤 단장이냐고 묻자 그는 “드러나지 않게 프레스(압력)를 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일정이 아무리 타이트해도 프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 면에서 단원들의 협조로 지금까지 해왔다. 음악적으로는 제가 좀 몰아치는 스타일인데 원하는 것을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클래식의 대중화가 이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어렵다는 이들이 많다고 하자, 성 단장은 되레 가요나 팝이 자신에게 어려운 장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줄곧 클래식 안에서 살아와 왜 어려운지 체감을 잘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장소나 환경이 주는 위압감이 그 이유가 아닐까 했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공연으로 지난 2004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옐로라운지’를 예로 들며 “생소해서 그렇지 감성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앞으로 클래식을 하는 저희도 노력할 테니 일반 분들이 편견을 갖지 않고 접하려고 노력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 단장은 지휘를 시작하며 ‘최초의 여성’이란 타이틀을 부제처럼 달고 다녔다. 젊은 아시아 여성이란 편견을 딛고 137년 전통의 미국 보스턴심포니에서 첫 여성 부지휘자를 역임했고 2009년부턴 서울시향 부지휘자였다. 당연히 실력이 뒷받침됐다. 졸링엔 여성 지휘자 콩쿠르 1위, 게오르그 솔티콩쿠르 1위, 말러 국제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등을 수상했다. 피아노 전공으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학 도중 2001년 스물다섯 나이에 독일 지휘자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공연 지휘를 본 게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는 지휘자에게 실력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리더십’과 ‘인격’이다. 그는 “보통 100명, 적게는 60명 정도로 많은 인원을 거느리니까 그분들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음악가들의 자기 색깔, 자유분방함을 한곳에 모으는 리더십과 인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이란 말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제가 나오기까지 선배들의 피눈물이 있었을 것 같다. 많은 눈물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최초보다 끝까지 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최초의 말이 의미가 생긴다”고 말했다.

 

성시연(37)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이 8일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시연(37)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이 8일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는 일본에서도 ‘당신이 한국 국공립 오케스트라 여성 최초의 지휘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 지휘자가 있지만 80~90세까지 조명받는 지휘자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길게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도움닫기 하기 위한 좋은 시절”인 듯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좋은 지휘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며 음악가의 ‘색깔’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외국 무대에선 지휘자가 어떻게 단원을 이끄는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를 중요하게 보는데 아직 국내는 테크니컬 이슈만을 갖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에서 좋은 지휘자가 나오길 많이들 바라는데 그러기 위해선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좀 자유롭게 풀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간 것도 결국 “자유로운 분위기도 있고 음악적으로 무한대의 영감을 제공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브람스 심포니’  4번을 추천했다. 그는 “죽음에 관한 멜랑콜리한 심포니이긴 하지만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극복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내년을 계획하고 올해 마무리를 잘 하시길 바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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