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신장했지만 아직 모든 여성이 평등한 것 아냐
“분쟁 시 성폭력은 일상의 성차별이 더 악화된 것”
평상시 근본적인 여성 차별의 원인 찾아 해결해야

 

라시다 만주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라시다 만주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심각한 인권 문제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연한 여성폭력은 가정폭력입니다. 여성할례, 아동결혼, 조혼, 배우자에 의한 폭력, 근친 강간 등이 문화나 종교, 전통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가정폭력을 척결했거나 큰 개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라시다 만주(Rashida Manjoo·사진) 유엔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가정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여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초대돼 방한한 그는 여성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이 20년 전에 설치돼 활동해왔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엔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여성폭력의 형태, 발생률, 원인, 결과를 연구하는 역할로 만주 특보는 그동안 가족, 지역사회, 국가, 초국가라는 4가지 영역에서 여성폭력을 분석해 왔다.

“여성들의 권익 향상에 대한 우리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어 문제입니다. 여성들이 많은 것을 이뤄냈고, 이제는 평등하기 때문에 여성을 다르게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로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 여성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여성의 권익이 향상된 것은 아닙니다. 정치·경제 영역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폭력과 성추행 등 직장에서도 피해 대상은 여성이니까요.”

만주 특보는 많은 국가에서 법률, 정책, 국가 행동계획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여성위원회, 인권위원회, 여성의 날 등이 생겨났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인 관점에서 사회변혁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깼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진정한 권력을 갖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그는 공직에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여성이 사적 영역에서는 아닐 수 있다며 공적·사적 영역 사이의 장벽과 간극을 아직까지 좁히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라시다 만주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라시다 만주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또한 그는 한국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예로 들며 분쟁지역의 분쟁 시 성폭력에 대해서 “그것이 마치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분쟁 시 성폭력은 분쟁 전이나 후, 즉 평상시에 있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악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분쟁 시 성폭력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일상의 성폭력에 대해 주목을 못 하게 되죠. 아프리카 여성들은 자신이 늘 ‘심각하지 않은 전쟁’ 중에 살고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매일같이 집에서 전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평상시’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아요. 분쟁 시 성폭력이 일어난 구조적이고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남아프리가공화국의 이주 3세대인 만주 특보는 가난과 유색인종이라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자라 “인권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유전자(DNA) 속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를 위해서, 또 자유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현재 케이프타운대학교 공법학 교수로 법대 인권 프로그램의 공동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9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지명으로 특보가 된 후 여성폭력의 원인과 결과 조사 및 여성폭력 예방과 국가의 태도 등을 모니터링했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개선하고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만주 특보는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끝나는 내년 새로운 ‘post 2015’ 의제에 여성폭력이 독립적 목표로 설정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했다.

“유엔의 현재 관점은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라 여성폭력이 독립적인 목표로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폭력을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국가가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을 들여서 여성폭력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독립적 목표는 아니더라도 정확한 타깃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할 일들을 찾고 향후 15년 동안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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