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1명’ 영아 유기, 병든 사회가 부추겨
‘이틀에 1명’ 영아 유기, 병든 사회가 부추겨
  • 이하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1.25 16:12
  • 수정 2018-01-25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미혼모의 극단적 선택
5년간 영아 유기 679건…갈수록 늘어
영아유기 방법 상세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여성신문 DB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여성신문 DB

신생아를 버리는 ‘영아 유기’는 아동학대 범죄다. 형법 제272조에 따라 보통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부모로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벼랑 끝에 놓인 미혼모들이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미혼모라는 ‘사망선고’와 같은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또는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영아 유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7월 A(33)씨는 생후 3일 된 아기를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 한 교회 출입문 의자에 놓아둔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씨는 “직업이 없어 자식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지난 8월에는 광주에 사는 B(29)씨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출산한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 뒤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는데 갑자기 죽은 아이가 태어나 당황해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영아 유기는 매년 늘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 7월까지 영아 유기가 679건 발생했다. 이틀에 1명 이상의 아기들이 버려지는 셈이다. 영아 유기 건수는 지난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으로 증가 추세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2009년 52건 이후 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영아 유기 피의자 342명의 연령을 살펴보면, 21~25세가 75명으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15~20세 67명, 31~35세가 54명, 36~40세가 53세, 26~30세가 52명이었다. 특히 10대와 20대 초반 어린 미혼모가 많았다. 

유 의원은 “대부분의 미혼모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아기를 양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할 책무는 결국 국가에 있다.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오영나 전국여성법무사회 부회장은 지난 6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주최로 서울 마포구청에서 ‘영아 유기의 현실과 대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범죄인 영아 유기를 완충해주는 현실적 방안으로 일명 ‘베이비박스’가 유일한 상황”이라며 “버려지는 영아들이 겪을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베이비박스가 유지되고 있으나 보다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복지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는 지난 2009년 버려진 채 죽어가는 아기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울의 한 교회 목사가 처음 설치했다. 이들은 한밤중에도 아기를 두고 갔다는 벨이 울리면 뛰어나가 버려진 아기들을 정성을 다해 돌본다. 그러나 이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오 부회장은 이와 함께 출생등록제와 익명출산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익명출산제는 산모가 병원에서 출산할 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의 X출산제, 독일의 익명-모세프로젝트, 베이비-클레페 등이 대표적이다.  

성정현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영아 유기를 막고 아기와 엄마의 삶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출산제는 적합한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성 교수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떼일까 눈총을 주고, 독촉을 하기 때문에 미혼모들은 아기를 낳자마자 주민센터로 가서 미혼모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이런 경험은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위기일 수 있기 때문에 익명출산제가 정착되려면 출산 시점부터 익명성과 출산비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은희 미혼모가족협회 대구지부장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미혼모들은 쉼터 등 정보 제공 창구에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입양과 양육를 결정한다”며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익명출산제나 베이비박스 관련한 정보가 많이 노출되고, 입양이나 양육하는 것보다 법적 절차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말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 처절한 엄마들도 있다”면서 “이런 제도보다는 미혼모가 아이를 마음놓고 양육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