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100주기까지 추모 순례 지속할 것

 

“우리가 묵었던 일본 도쿄 시내 호텔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이나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학을 나눠줬어요. 야히로부터 요코아미초까지 일본 시민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잘 받아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함인숙(54·사진) 목사는 지난 9월 1일 일본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던 때를 설명했다. 함 목사와 씨알재단 관계자들, 일본 시민단체 회원까지 20여 명의 순례단은 일본 스미다가구의 야히로에서 추도제가 열리는 요코아미초 공원까지 10여㎞를 도보로 순례하며 한국에서 준비해간 종이학을 일본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시즈오카, 야마나시 지방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은 사망자와 행방불명된 사람이 40만 명에 이르는 대재앙이었다. 당시 일본 정권은 혼란을 수습하고 민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재일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을 모함해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때 사망한 조선인의 숫자는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1973년 재일동포와 일본의 시민단체는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던 요코아미초 공원에 추모비를 세우고 해마다 추도행사를 열어왔다. 재단법인 씨알은 올해 이 행사에 함께 참여해 종이학을 나눠주고 추모 순례와 추모제를 진행한 것이다. 한국여신학자 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함인숙 목사가 이번 행사의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종이학은 치유, 용서와 화해, 상생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관동대지진 학살의 피해자인 우리나 가해자인 일본 씨알에게나 치유가 필요합니다. 관동대지진 91주기인 올해 시작한 이 순례 행사는 100주기가 될 때까지 10여 년간 지속할 생각입니다. 그 시간 동안 한·일 간의 문제도 잘 풀리고 그렇게 되면 남북한 통일 문제까지도 함께 다룰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함석헌·유영모 선생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씨알재단에서 함 목사는 지난해부터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 운동’을 제안해 펼쳐왔다. 살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여건이 안 돼 이루지 못하고 임종을 앞둔 사람들을 찾아내 소망을 들어주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주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자들을 돕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번 순례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함 목사는 이번 순례 여정에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도 들렀다. 후쿠시마현 이와키 마을에 들른 순례단은 도쿄에서 나눠준 것처럼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 1500마리를 병에 담아 전달했다.

“이번 순례길에 원전 반대의 목소리를 함께 담은 것은 관동대지진 학살도 국가에 의한 폭력이었고,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동일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지금 후쿠시마에서도 일본 정부가 기득권을 갖고 일본민들을 기만한 것을 국가폭력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997년 서울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목사 안수를 받은 함 목사는 “율법에 치우친 기존 보수 교단을 떠나 철저히 예수의 삶을 살고자” 7년간 목회를 했다. 50여 명의 성도와 목회를 하다 2007년 필리핀으로 날아가 무슬림 커뮤니티 협력사업을 진행했다. 빈곤 지역 사람들에게 양계장, 버섯 키우기, 모래 채취 등 살아갈 방법을 전파하고 그들과 함께 1년을 온전히 함께 살았다. 이후 몇 달씩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지금까지도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예요. 그동안 필리핀에 쏟았던 열정을 이제는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해 몰두해야겠다는 자각이 생긴 겁니다. 우리가 한·일문제를 풀어가려면 우리를 먼저 잘 알고 일본을 알아가면서 서로를 받아들여 ‘커터피’해야 합니다. ‘커터피’는 다석 유영모 선생이 가나다라 풀이에서 모은 말인데 ‘커지고 터지고 피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과 우리는 같이 커지고, 같이 터지고, 같이 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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