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숭’을 그리는 여자, 김현정
‘내숭’을 그리는 여자, 김현정
  • 이소영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10.17 10:20
  • 수정 2018-01-24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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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한복을 입은 여성이 허벅지를 드러낸 채 반쯤 누워 있다. 한 손에 들린 빈 짜장면 그릇을 보아하니 배가 부른 모양이다. 식탁 대신 사용한 라면 상자 위에는 탕수육과 만두가 가득하다. 참한 규수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먼 듯하다. ‘한국화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김현정(26) 작가의 ‘내숭 시리즈’ 그림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내숭이야기’ 전시에서 ‘완판’ 기록을 세웠다. 지난 6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에는 역대 최다인 3451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겉과 속이 다른 걸 ‘내숭’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내숭 뒤에 감춰진 솔직한 감정과 행동을 그림을 통해 표현해놓은 것이 제 작품이지요. 처음에는 앞과 뒤가 다른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이 싫어 그리기 시작했는데, 제가 모델이 돼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누구나 내숭이 좀 있지 않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림을 배운 그는 서울대 동양화과 2학년 때부터 ‘내숭’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중점적으로 그린 건 2년 전부터. 한복을 입은 여성을 수묵담채화로 그린다. 섬세한 붓끝으로 그린 그림에 산뜻한 색상의 한지를 붙인다. 아이디어는 일상생활에서 얻는다. 새벽작업이 허다한 작가의 삶,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내숭 올림픽’을 그렸다. 암벽등반과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당구·골프를 치는 내숭녀의 모습이 작품에 담겼다. 

“작업실 근처에 있는 근린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다양한 복장, 다양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운동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좋았어요. 평소 전 ‘숨쉬기 운동’이 고작이었는데 덕분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한복을 자주 입는다. 외부 행사나 강연을 할 때, 전시를 관람할 때면 늘 한복을 고집한다. 한복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한복의 특성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한복을 즐겨 입는 어머니 영향이 컸어요. 가족 행사가 많아 한복을 입는 일도 잦았고요.자주 입어봐야 한복의 멋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복의 넓은 치마폭은 비밀스러운 공간이에요. 제가 한복 안에서 짝다리를 짚는지 모르잖아요.(웃음)”

 

젊은 신진작가로 주목받지만 그 역시 여느 20대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가 있었단다. “작가를 하면 ‘배고프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 고민을 듣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른바 ‘삼성맨’처럼만 그림을 그려보라고. 그때 이후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하게 그려요.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지만 너무 압박감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안양예고에 강의를 나가는 그는 학생들과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한단다.  

그의 꿈은 미술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사람들이 미술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속상해요. 다소 난해한 그림을 봤을 때 자신이 ‘무지하다’ ‘창피하다’고 여기지 마세요. 자꾸 보고 즐기면 어느 새 느끼게 되고,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질 거예요. 앞으로 전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치중하지 않고, 제가 느낀 그대로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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