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한 범죄임에도 가해자·피해자 모두 가볍게 치부
“강제추행이라는 점 분명히 교육해야”

 

#1.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서서 올라가는 중이었어요. 왼편에서 어떤 남자가 걸어 올라오면서 엉덩이를 만지고 갔어요. 실수인가 헷갈렸는데 뒤돌아서 날 쳐다보면서 씩 웃는 모습에 기분이 정말 더러웠어요. (직장인 C씨)

#2. 새벽 2시쯤 술 마시고 귀가하던 길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렸는데 누가 갑자기 엉덩이를 확 만지고 반대편 도로로 건너가 버렸어요. 20대 남자 같았는데 뒤에서 아예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만지고 도망가더라고요. 욱했지만 무서워서 택시 타고 집으로 갔어요. 이제는 버스에서 내리면 주위를 살피고 바로 택시 타요. (취업준비생 K씨)

#3. 저는 유명 워터파크에서 당했어요.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리 아래로 손이 쑥 들어왔어요. 당황스럽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도 그 때 생각하면 화가 나서 말도 안 나와요. (대학생 A씨)

일상 곳곳에서 성추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신체를 만지고 튄다는 의미의 ‘만튀’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실제 피해 사례를 보면 장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수법으로 벌어진다.

피해자들은 번거로울 뿐 아니라 2차 피해를 우려해 신고를 꺼린다. C씨는 “세상에 별 XXX들이 많으니 나중에 보복할까봐 신고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때 중요한 모임에 늦은 상황이었는데 신고하면 경찰서도 가야하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피해자라는 기록이 남는 게 싫다”고 덧붙였다. K씨도 “여자 입장에서 새벽에 술 먹고 그런 일 당한 게 좋은 일은 아니니까 차마 신고를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서울 원효지구대 관계자도 “주변에 여대가 있음에도 만튀를 당했다는 신고는 한 번도 접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만튀는 엄연히 강제추행인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가볍게 치부하거나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만튀 경험담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글에는 “나도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심지어 ‘흥분돼서 만튀를 즐긴다’는 작성자도 있었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강제추행 사례가 퍼지면서 일부 젊은 층은 만튀를 놀이 문화 정도로 여긴다. 온라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 더 큰 범죄를 낳을 수도 있다. 지난 7월 10대 여학생 4명을 추행한 혐의로 입건된 20대 남성은 “호기심에 그랬다”고 진술한 바 있다.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만튀가 범죄 행위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튀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강제추행죄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 중 10대 학생들도 많은데 이들은 만튀가 범죄인지도 모른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학교 성교육 시간에 만튀도 강제추행이며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도 자신이 무엇을 당한 건지 모르기 때문에 신고를 안 한다. 물론 범인을 잡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신고 건수가 올라가면 수사를 하고 이후 사회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신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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