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행정부 시절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이 입안
가족문제·여성 개인문제에서 범죄로 인식 전환
사법 시스템 내 성적편견·여성비난은 개선 과제

 

미 여성폭력방지법의 입안과 제정의 주역이었던 조 바이든 현 부통령.
출처 : 백악관 웹사이트 www.whitehouse.gov
미 여성폭력방지법의 입안과 제정의 주역이었던 조 바이든 현 부통령. 출처 : 백악관 웹사이트 www.whitehouse.gov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가족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생겨도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피해자는 다시 언제 폭력이 발생할지 모르는 집으로 돌아가 가해자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 ‘가족 내의 문제는 가족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성폭력도 마찬가지였다. 성적 농담이나 일방적 신체 접촉을 당해도 여성은 그냥 참아내야 했고 성폭행을 당하면 이를 부추긴 여성에게 원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과 같은 행동을 하나의 범죄로 인식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게 된 데는 미국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VAWA)의 역할이 크다. 1994년 미 연방법률로 정식 채택된 후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후발 국가들의 여성폭력방지법 제정과 국제적 법률인 ‘국제여성폭력방지법(IVAWA)’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여성 지위 향상에 영향을 끼친 VAWA가 9월 제정 20주년을 맞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VAWA 제정 20주년 기념 축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은 가족 내 문제’라 여겼을 때 희생자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침묵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VAWA는 ‘모든 미국인은 위해를 당할 두려움 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약속을 구체화시켰다”고 말했다.

VAWA는 1990년 당시 상원의원(델라웨어)이었던 조 바이든 현 부통령이 처음 입안했고 1993년 9월 13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며 정식 제정됐다. VAWA는 성희롱, 가정폭력, 스토킹 등을 범죄로 규정하며 이들 범죄와의 전쟁에서 전국적인 기준을 수립했다. 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수사관과 검사 등 교육, 피해자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규정도 포함됐다.

VAWA의 제정은 미국 사회를 크게 바꿨다. 지난 20년간 가정폭력 발생 건수는 64%나 감소했으며 수십억 달러의 사회적 비용 및 의료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전국적인 여성폭력 핫라인을 통해 340만 명의 남녀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대를 폭력으로 간주하고 이에 사회적인 분노가 일어나는 등 문화도 바꿔 놓았다. 지난해에는 법률의 범위를 성소수자 개인, 원주민 여성, 이민자, 학생 등으로 넓히는 수정사항을 포함한 재인증도 이뤄졌다. 동성 커플 포함을 반대하는 공화당 진영과 2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VAWA를 준비하던 당시 여성폭력 및 여성학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바이든 부통령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배우자 폭행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프로 풋볼 선수 레이 라이스 사건을 이야기하며 VAWA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라이스를 파문한 NFL의 결정이 옳은 일이라고 했으며 “VAWA 제정에 있어 후회되는 일 중 하나는 가정폭력에 ‘domestic violence’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애완고양이(domesticated cat)처럼 사육의 의미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10일 타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VAWA와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며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여성 5명 중 1명이 성폭력이나 성폭력 시도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미국 사법 시스템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성적 편견이나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으니까’라거나 ‘그런 짓을 당할 만해’라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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