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최후 통첩성 발언으로는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 설득할 수 없어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토마스 바흐(Thomas Ba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접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토마스 바흐(Thomas Ba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접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오랜 침묵을 깨고 발언을 했다. 발언 요지는 크게 네 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로 반대한다. 둘째, 여당이 야당·유가족 동의를 받아 특검 추천권을 행사토록 한 여야 2차 합의안은 실질적으로 여당의 마지막 결단이다. 셋째, 세월호특별법에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넷째, 국회가 국민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

국정 총책임자로서 대통령은 국회가 세월호특별법에 묶여 마비되고 있는 게 안타까울 것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이런 작심 발언이 과연 막힌 정국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대답은 참으로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을 설득하기엔 너무 부족했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일방적 선언으로 비쳤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엄밀히 얘기하면 야당과의 협상 상대인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해야 할 말을 대통령이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여당에 세월호법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최후 통첩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결국 그동안 세월호 협상을 청와대가 주도했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비난했다.

더구나 대통령은 삼권분립을 명분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일축했지만 그동안 청와대가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는 관행 그 자체가 삼권분립을 해치는 행위다. 권력 융합을 원칙으로 하는 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권력 분산이 핵심이다.

따라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상호 ‘견제하고 균형’(check and balance)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은 정부를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돼 있다.

대통령제에서 진정한 삼권분립은 여당과 야당이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서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정치라는 명분으로 청와대가 집권 여당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정이 정치를 압도할 수 있다”는 ’행정 독주적 사고’다.

문제는 청와대의 이런 사고가 정치권의 강 대 강 대치정국을 가져오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집권 여당이 자율성을 상실한 채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야당과 진솔하게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겠는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이 절박한 심정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 대표를 만나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도 아니고 국무회의 석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작심 발언을 한 것은 실수다.

트루먼에서 클린턴까지 미국의 여러 대통령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온 정치학자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설득은 소통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소통 없는 설득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절규하면서 만나달라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소통하지 않은 채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최후 통첩성 발언으로는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을 설득할 수 없다. “독선적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들과 만나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대통령만이 누릴 수 있는 설득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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