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대통령의 딸로 민주화 운동 이끌어
초대 대통령의 딸로 민주화 운동 이끌어
  • 주준희 / 여성협상리더십연구원 원장
  • 승인 2014.09.24 10:18
  • 수정 2018-01-22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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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암살당하는 비운 속에 정권 잡아
올해 1월 세 번째 총리 자리 올라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2010년 5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0 방글라데시 페스티벌에서 교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2010년 5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0 방글라데시 페스티벌에서 교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1억5000만 명이나 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9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이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1970년 최악의 사이클론으로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1971년 서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전쟁에서는 200만 명의 인구가 학살을 당하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기도 하다.

정권이 혼란할 때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계엄령과 긴급사태가 선포됐지만 이에 맞서 두 명의 여성 지도자가 민주화 운동을 이끌면서 총리와 야당 당수를 지냈다. 암살당한 초대 대통령의 딸인 아와이 연맹의 셰이크 하시나(67) 현 총리와 암살당한 대통령의 부인인 방글라데시 민족당(BNP)의 칼라다 지아 전 총리다. 이들은 가택연금, 체포, 암살시도 등 험난한 정치 여정 속에 40년 가까이 방글라데시 민주화를 이끌어 왔다. 그렇기에 2014년 포브스지는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100명의 여성 중 47째로 주목했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2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독립전쟁을 통해 불평등했던 서파키스탄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탄생했다. 독립운동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부친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으로, 그는 아와이 연맹의 당수로서 서파키스탄에 맞서 투쟁하다 체포됐고, 독립 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사회주의 경제와 비동맹 중립노선을 선언했다. 그러나 4년 후에는 두 딸만 제외하고 온 가족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셰이크 하시나는 라만 대통령의 다섯 자녀 중 맏딸로서 28세 되던 해에 이러한 가족의 비운을 경험했다. 21세에 핵물리학자인 남편과 결혼해 인도에 머물고 있던 그는 귀국이 금지됐다가 6년 후 아버지가 창당한 아와이 연맹의 당수로 추대돼 귀국했고 운명적으로 방글라데시의 민주화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녀가 귀국하던 해에 당시 대통령 지아우르 라만이 암살당하고 극심한 혼란 속에 엘샤드 장군이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는 일이 일어났다. 계엄령을 선포한 엘샤드는 5년 후 자티야당을 창당하고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어 군정을 종식하게 된다.

엘샤드 장군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1984년과 85년 하시나는 야당 당수로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이끌면서 여러 번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암살당한 지아우르 라만 대통령의 부인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방글라데시 민족당(BNP) 역시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여 1990년 대규모 시위로 군사정권을 축출하고, 1991년 민주적 선거가 실시됐으며, BNP가 정권을 잡고 칼레다 지아가 총리로 취임한다.

5년 후인 1996년 하지나는 아와이 연맹당의 당수로서 BNP의 부정선거를 규탄했고 BNP만 빼고 모든 정당이 선거를 보이코트한 뒤 다시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둬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민주적 선거는 있었지만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부정부패 지수가 높은 가운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로부터 5년 후 2001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아와이 연맹당이 64석을 얻고 BNP는 압도적 다수인 234석을 얻어 하지나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그 결과를 수락하기를 거부하고 2008년까지 야당을 이끌게 됐다. 이제 아와이연맹과 BNP 간 경쟁구도는 폭력으로 치달아 아와이연맹에 대한 무력 공격이 계속됐다. 2004년에는 국회의원이 암살을 당하고 전 재무장관이 수류탄 공격으로 암살되는 가운데, 하지나도 암살 기도 속에서 살아남게 된다. 2006년에서 2008년 사이 방글라데시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으며, 다시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치활동은 전면 금지됐다.

군사정권은 2007년 두 여성 총리를 부정부패, 살인죄로 체포하고 기소한다. 하시나가 수력발전소 건설 관련 이권에 대한 대가로 4억원을 수뢰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2008년 실시된 선거에서 아와이연맹이 이끄는 14개 야당의 단일화로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 하시나는 다시 총리 권좌에 올랐다. 그해 그녀는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경험했다. 2014년 1월의 총선을 BNP의 야당 단일화 진영이 보이코트하면서 하시나는 세 번째로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이제 두 여성 총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질서를 수립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방글라데시의 민주화가 경제발전과 청렴정치에도 성공하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의 유력한 후보였던 하시나 총리는 며칠 전 9월 10일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후보 사퇴 의사를 밝혔고 그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6조원이라는 지원을 받게 될 것 같다. 6월에는 중국의 리커창 총리와 회담을 하여 석탄 기반 발전소를 비롯해 정보기술 인프라 네트워크, 치타공-콕스 바잘 철도 건설, 동부 정유공장 건설, 교량 건설 등에 중국의 지원을 받기로 합의, 서명하고 방글라데시에 중국의 경제특구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와는 1995년 991만7355㎡(300만 평) 규모의 한국수출가공공단을 합의하고 조성 중이다. 한국이 방글라데시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여성교육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하시나 총리는 1남 1녀를 두었으며 남편은 5년 전 작고했다. 아들은 미국에, 딸은 캐나다에 결혼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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