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옥스포드대학과 크리스트 처치교회의 역사에 대해 엄마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아이들이 옥스포드대학과 크리스트 처치교회의 역사에 대해 엄마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여행을 통해 나와 아이들 모두 많이 배우고, 더 성장해서 와야지 하는 다부진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닥쳐보니 배우는 방식과 느끼는 부분들이 참 많이 달랐다. 어른들은 책으로 제도를 이해하고, 유적지 중심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글이 아닌 실생활 속에서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며 여행을 즐겼다.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의 본고장인 런던의 웨스트엔드까지 가는데 뮤지컬 한 편은 보고 와야지 하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선택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영화로 사전 학습을 시켰다. 광산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던 11세 소년 빌리, 처음에는 가족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지만 마침내 빌리의 재능을 인정한 아버지의 지원을 통해 발레리노가 된다는 내용이다. 빌리의 아름다운 외모와 춤과 노래는 10대 소녀인 첫째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뮤지컬의 배경은 광산 민영화 반대 파업이 한창이던 1984년 영국 북부 광산촌이다. 대처 총리의 얼굴을 희화화한 피켓을 들고 광산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빌리의 형과 아버지가 싸우는 장면도 나왔다. 뮤지컬을 관람하고 나오면서 막내인 민석이가 ‘근데 왜 빌리 아빠가 그러는 거야?’라는 질문에 ‘광산 민영화 반대 시위를 한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고, ‘근데 민영화가 뭐야?’라는 물음에 어른들의 대답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누나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들을 풀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 아까 우리 지하철 탔을 때 더웠지? 그거 지하철이 민영화돼서 그런 거야. 돈 아끼려고 에어컨 안 틀어서 더운 거야.’ 정말 명쾌하게 와 닿는 한마디였다. 우리 딸들이 이렇게 똘똘했던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우리는 순간 고슴도치 엄마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런던 지하철은 1800년대에 만들어져 공간이 좁고, 낡았고, 그리고 더웠다. 지하철은 왜 이렇게 더울까 하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오래 돼서 그렇지, 그리고 민영화돼서 그런 거 아니냐는 등의 말들이 오갔다. 아마도 어른들이 나누던 그 대화를 아이들이 기억하고 뮤지컬 속의 민영화 반대 광산파업 시위를 영국의 지하철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바가 이럴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고, 내 안에 있던 고정된 틀이 부서지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와 닿는 살아 있는 오감을 통해 여행을 느끼고 있었다.

 

크라이슬러처치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크라이슬러처치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2시간 넘게 이동해서 도시 전체가 대학인 옥스퍼드를 방문했다. 세계 명문 대학을 보고 큰 꿈을 키우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희망은 딸들의 마음과는 달랐나보다. 둘째 딸 민서의 결정적 한 방 ‘엄마, 근데 우리 왜 한참 동안 버스를 타고 지방대까지 구경 온 거예요?’ 아이고 맙소사. 런던이 수도인데 수도권에서 한참 벗어난 지방대학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이른바 ‘인 서울(in 서울)’과 지방대로 대학을 나누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민서에게도 벌써 뿌리 깊게 자리 잡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다. 옥스퍼드에서 민서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오직 옥스퍼드 천크리스찬 처치 칼리지의 연회장뿐이었다. 이유인 즉 이곳이 바로 해리포터의 만찬 장면이 촬영된 곳이기 때문이다. 지방대 구경 온 불만을 녹이게 해준 해리포터 만세다.

처음에는 내 뜻과 벗어난 아이들의 모습에 실망도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시선이 신선하고 기특하게 여겨졌다. 다만 나와 시선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여행에 정석이 있을까? 아이와의 여행에서 어른들은 이것저것 채워주려고 하지만 자신의 그릇에 담아갈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현명하게 여행의 목적을 이룬 것 아닐까? 자신이 가진 바구니의 크기에 맞게 ‘민영화’라는 어려운 말을 이해해서 담아 넣고,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해리포터를 가득 담아 넣어 왔으니 말이다.

 

옥스퍼드대학 거리에서 아이들이 살짝 지쳐있다.
옥스퍼드대학 거리에서 아이들이 살짝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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