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편에 서고 싶어 판사직 도전했죠”
“약자 편에 서고 싶어 판사직 도전했죠”
  • 권은주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09.01 13:48
  • 수정 2018-01-15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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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헌 미국 LA고등법원 판사
지난 6월 LA고등법원 판사에 당선
아동·여성·한인 인권 보호에 앞장

 

박향헌 미국 LA고등법원 판사 ⓒ권은주 기자
박향헌 미국 LA고등법원 판사 ⓒ권은주 기자

“어린이와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유색인종, 한인들이 법으로부터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돕기 위해 판사직에 도전했죠.”

제14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WOIN·코윈) 개막식 이후 만난 박향헌(51) 씨. 그는 판사직에 도전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박향헌 씨는 지난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고등법원 판사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20년간 LA카운티 연방 지방검찰청 검사로 일하며 아동·여성 성폭력과 가정폭력 범죄를 담당해왔다. 한인검사협회장을 맡는 등 법조계에 한인 사회를 알리고, 인권 보호에도 앞장서 왔다. 

“미국은 판사의 영향력이 매우 커요. 판사의 이해력, 성향 등이 재판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치다보니 법적 경 험이 많은 지혜가 많은 판사가 요구되죠. LA에 한인들이 많다보니 케이스도 많아요. 하지만 판사들 중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도 계시고 타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분들도 있어 쉽지만은 않아요. LA에 있는 400명의 판사 중 한인 판사는 5명에 불과하다 보니 문화나 정서를 감안한 판결을 받기 어렵죠. 판사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아 법원에 가서 말 한마디 못하고 졌다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17세 때 미국으로 이민한 이후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카운슬러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구타 당하는 여성과 미혼모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생각을 바꿔 법대에 들어갔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가해자를 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지요. 제가 있던 검사실은 주로 중범을 다뤘어요. 한인 검사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 판사들도 한인 검사가 잘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요.”

그가 LA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1994년에는 1000명의 검사 중 한인 검사는 3명뿐이었지만 지금은 40명으로 늘어날 만큼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일과 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이 둘을 낳는 동안 육아휴직을 쓴 적이 없어요. 휴직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일을 계속했어요. 희생이 따른 당연한 결과지만 승진도 빨리 했죠.” 그가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남편이다. 그에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은 중학교에서 사회학과 미국 역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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