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7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과 함께 안산부터 서울까지 도보 행진에 동참했다. 50여㎞를 걷는 동안 발에 물집이 잡히고 온몸이 비와 땀으로 젖었지만 희생자를 기리고 새로운 ‘안전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 된 염원으로 지칠 겨를이 없었다. 도보 도중에 우연히 예전 일터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를 만났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 후배는 1박2일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들 옆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했고, 나는 자연스레 15년 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1998년, 나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새만금 갯벌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강화도에서 새만금까지 서해안 갯벌을 따라 걷는 도보순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두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었다. 순례 동안 리더로서의 역할을 비울 수 없었기에 열흘 가까이 딸을 맡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어린 딸이 보고 싶어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1년 가까이 친정에 맡겼다. 아이가 서너 살 무렵부터는 사무실로 데려와 돌보며 일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동료에게 맡길 때도 있었다. 나 또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일과 출산·육아 병행의 어려움을 처절하게 겪었다.

수차례 중도 포기의 유혹과 위험을 넘어서야만 일을 하고 경력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현실, ‘독종’으로 불리지 않으면서 경력을 유지하며 버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갈수록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넘어 ‘비정규직의 여성화’ 문제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일이 비정규직밖에 없다는 데 있다. 기존에 있는 지원법령인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은 이미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기보단 피상적인 정책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법 자체가 아이 양육 후에 약간의 시간을 나눠서 결국 ‘비정규직’ 경제활동을 촉진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여성고용률을 높인다며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마구 늘리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사후약방문이자 여성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는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지난 7월 내가 개정 발의한 ‘경력단절예방법’이 꼭 필요한 이유다. 핵심은 경력 단절 후의 일자리를 만들기에 앞서 경력 단절 예방을 우선으로 하자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과 출산·육아가 함께 어우러져 경력 단절의 근본적인 처방이 되는 규칙을 만들어보자는 말이다. 법률명도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 및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으로 변경해 ‘예방’을 강조하고, 3년마다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경력단절을 초래하는 부당한 근로 여건에 처한 경우 신고·상담·조사·개선 조치를 하는 등 여러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이 법으로 경력단절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로 하여금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 의무를 명시하고 강화된 제도 개선을 통해 여성의 경력 유지와 양질의 일자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공되길 기대한다. 이 법을 통해 엄마인 내가, 또 다른 수많은 엄마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우리 아이들이 또다시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