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80세를 넘긴 고려인 할머니 한 분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대륙횡단을 감행하고, 1990년대 초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시기에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만난 필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따듯한 배려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은 지난 6월 한인 러시아이주 150주년 독립투사 후예 고려인동포 모국방문 환영식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80세를 넘긴 고려인 할머니 한 분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대륙횡단을 감행하고, 1990년대 초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시기에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만난 필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따듯한 배려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은 지난 6월 '한인 러시아이주 150주년 독립투사 후예 고려인동포 모국방문 환영식'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사방이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어지며 지평선이 열려 있는 러시아의 넓고 넓은 대지 위에서 80세를 넘기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곳은 1300년 전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일어났고, 2000년 전에는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가 고대왕국을 경영했으며, 4000년 전에는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20세기 초에는 일본의 압제를 피해 모여든 한국인에게 애국지사들이 한국 역사를 가르쳤던 우리 독립투사들의 땅이었던 곳이다. 독립투사들의 피땀과 눈물의 힘이 새롭게 다가와 가슴이 저려오는 광복절이 오면, 한민족 만년의 역사가 덮여 있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주의 작은 마을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 할머니는 1936년 스탈린에 의해 멀고 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다가 60 평생을 지내고, 1994년에 다시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국 역사의 땅으로 되돌아 온 분이다. 할머니는 힘들고 열악한 환경과 생존의 위협으로 불안한 사회 격변기를 헤치며 자녀들을 이끌고 대륙을 횡단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8월 7일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연합회가 고려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자동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통일 드라이브’가 40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이 대장정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난 할머니가 가족의 안녕을 위해 감행했던 대륙 횡단의 길과 같은 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연해주로 온 할머니의 그 길은 하루하루가 생존의 위기와 심리적 불안으로 지나온 날들이었지만, 자손들의 미래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80세를 지난 고령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대륙 횡단의 힘든 여정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었고 어머니의 힘이었다. 자식들의 안녕을 지키고자 헌신하는 어머니의 위기 대처 능력은 누구보다도 한국 어머니가 강했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자신들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생활은 풍족하고 안전했다고 한다. 지역사회 유지로서 자손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고 집에선 언제, 누가 오든지 음식 대접을 할 수 있도록 비축된 식량도 넉넉한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지역에선 자주권을 주장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회교도들이 중심이 된 토착민들이 동쪽에서 온 고려인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내몰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자손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본향인 연해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네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80세의 할머니는 8개월에 이르는 어려운 여정을 이끌었던 것이다. 가족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할머니 말씀에는 힘이 있었고 태도도 당당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자녀를 고루 보살피는 어머니의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나에게 한국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이끌었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당시 식량 부족으로 타인에게 저녁을 제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이 본성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은 배고파 보이는 외지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댁에서 뵌 할머니의 모습은 한국 전통 음식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집안의 중심 기둥이었다. 시래기된장국과 심심한 오이지, 만두를 손님에게 정성껏 대접했다. 나이프, 포크까지 준비된 격식 있는 상차림이었다.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아리랑, 도라지, 천안삼거리 등의 민요 가사가 적힌, 사오십 년은 지난 노랗게 바랜 노트를 들고 나와 아들과 딸들이 기타와 아코디언 연주를 하며 노래도 함께 불렀다. 그들은 한국 전통문화를 지키는 수호대였고 할머니는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고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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