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임신 18세 소녀, 낙태 불허에 단식투쟁, 강제 재왕절개
극히 제한적인 낙태 허용 법률 개정 요구 이어져

 

2011년 낙태를 허락받지 못한 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여성의 사건 후 벌어진 낙태 합법화 요구 거리 시위 모습. 
출처 : 초이스 아일랜드 choiceireland.org
2011년 낙태를 허락받지 못한 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여성의 사건 후 벌어진 낙태 합법화 요구 거리 시위 모습. 출처 : 초이스 아일랜드 choiceireland.org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18세 소녀가 낙태를 거부당하자 단식투쟁을 시작한 후 25주째에 반강제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 출산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아일랜드의 낙태법이 뜨거운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외국인 이주여성으로 알려진 이 소녀는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낙태 수술을 받고자 했으나 법원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미혼 여성의 임신은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어 그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의사들도 산모의 자살 가능성을 주장하며 낙태 허용을 요청했으나 허가는 나지 않았고 정부 당국이 고의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단식 투쟁을 통해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하려 했다. 보건당국은 산모에게 강제로 영양제를 주입하고 25주차에 조기 제왕절개 수술을 명령했으며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는 보호기관에 넘겼다.

유럽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낙태 금지법은 유엔인권이사회로부터도 “인권침해적이며 국제적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개정 권고를 받을 정도로 엄격하다. 아일랜드 정부는 2012년 낙태를 거부당한 후 패혈증으로 사망한 여성의 사건을 계기로, 2013년 처음으로 산모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을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발표했다. 하지만 산모의 자살 가능성 등 정신적 문제로 인한 생명의 위협은 심사가 까다로워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많은 아일랜드 여성들은 낙태를 위해 국경을 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연간 4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매일 평균 12명의 여성이 낙태 수술을 위한 여행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 여성이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처럼 비자 문제로 외국 여행을 하기 힘든 이주여성에게는 이마저도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아일랜드에서 낙태 합법화에 대한 논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프로 초이스’(Pro-choice·낙태 합법화) 운동가 및 여성운동가 진영은 “이번 사건은 낙태와 관련한 법률 개정 이후에도 실제 여성들의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면서 정부 당국의 처사를 비판하며 법률 개정을 촉구했다.

‘페미니스팅’ 설립자 제시카 발렌티는 영국 일간 ‘가디언’지 칼럼에서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도움”이라면서 8주차에 처음 도움을 요청한 때로부터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까지 17주 동안 홀로 싸우게 만든 정부 당국의 조치는 “정책이 아니라 학대”라고 비난했다. 또한 신체적·정신적으로 높은 위험을 안고 있는 25주의 미숙아를 강제 출산시킨 행위에 대해서도 윤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아일랜드전국여성위원회(NWCI)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정부의 행동을 ‘야만적’이라며 비난함과 동시에 낙태 합법화의 가능성을 봉쇄한 1983년의 ‘수정헌법 제8조’의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초이스 아일랜드’(Choice Ireland), ‘AIMS 아일랜드’ ‘낙태권리캠페인’ 등 낙태 합법화 운동 단체들은 공동으로 20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오코넬 스트리트에서 낙태법 개정을 요구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는 등 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보건부 산하 보건안전청(HSE)의 토니 오브라이언 청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와 관련된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보건안전청은 9월 말까지 조사를 끝내고 조사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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