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 향한 교황, 큰 울림·긴 여운 남겼다
낮은 곳 향한 교황, 큰 울림·긴 여운 남겼다
  • 김소정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08.18 17:07
  • 수정 2018-01-1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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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장애인·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만나
“참된 권력은 섬김” 몸소 실천하며 리더십에 대한 화두 던져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광화문까지 차량 퍼레이드를 하며 신자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광화문까지 차량 퍼레이드를 하며 신자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유가족부터 꽃동네 장애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78)의 행보는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다. 사랑과 용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 교황의 방한은 상처로 신음하는 사회의 약자들은 물론,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받고, 경제성장의 동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도 희망과 치유의 마음을 안겼다.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말라”고 말하는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 곳곳에 긴 여운을 남겼다.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접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접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파격 행보였다. 유족과의 만남은 14일 서울공항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영접하기 위해 나온 고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씨와 송경옥씨 등 유가족들의 손을 잡으며 “희생자들의 아픔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이튿날엔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 집전에 앞서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등과 만나 세월호 유족 순례단이 900㎞를 걸으며 메고 다녔던 6㎏ 나무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약속했다. 교황은 또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례적으로 직접 세례를 줬다. 세례명은 자신과 같은 ‘프란치스코’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교황 방한 위원회

이뿐만이 아니다. 교황은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직전 카퍼레이드 도중 무개차에서 내려 유족인 김영오씨에게 다가가 1분간 머무르며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아파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 100만 명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방한 기간 왼쪽 가슴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던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까지 진도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 편지를 띄우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챙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오미현 양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오미현 양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교황은 장애인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사랑을 베풀었다.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한 교황은 식물인간으로 20년간 병상생활을 하는 오미현(23)씨에게 다가가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밖에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사지운동장애아 차필립보(10)군, 두개골이 함몰된 이바오로씨, 뇌성마비 장애우 김인자씨, 구걸한 돈을 꽃동네에 기부해 알코올중독자요양원의 초석을 세운 시각장애인 홍도비아씨 등 꽃동네에 거주하는 80여 명의 장애인에게 일일히 다가가 머리에 입을 맞추거나 뺨을 어루만지며 축복 기도를 했다.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희망 나비 브로치를 선물받고 있다.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희망 나비' 브로치를 선물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까지 우리 사회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7명(강일출, 길원옥, 김군자, 김복동, 김복선, 김양주, 이용수)을 비롯해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 새터민, 납북자 가족 등을 초청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맨 앞줄 휠체어에 앉아 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허리를 굽혀 한 분씩 인사를 나누며 대화했다. 바로 뒷줄에 앉은 밀양 주민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도 인사를 건넨 뒤 제단에 올랐다. 김복동(89) 할머니가 건넨 위안부 진상규명 운동을 상징하는 금빛 나비 배지를 받아서는 바로 제의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받은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 사본 액자를 로마로 가져가기로 했다.

“참된 권력은 섬김”이라고 말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섬김’의 정신과 실천의 자세를 몸소 보여줬다. 가장 높은 종교 지도자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고통을 느끼며 아파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슬퍼했다. 낮은 곳으로 임한 교황의 소통 행보는 고통받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리더의 부재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 사회 갈등과 대립은 여전하며, 교황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만으로도 감동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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