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시상자·주최자 모두 여성
이공계 전공한 박 대통령, IMU 회장 잉그리드 도브시 회장 한자리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여성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마리암 미르자카니(37·이란)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13일 필즈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여성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마리암 미르자카니(37·이란)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13일 필즈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학 분야의 최고 업적을 기리는 상을 수여하는 자리. 이 자리에 수상자, 주최자, 시상자 모두 여성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116년 전 첫 개최된 세계 수학인들의 축제인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선 지금껏 여성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는 달랐다.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탄생했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상을 수여하는 ICM 전통에 따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참석, 이 대회를 주최한 국제수학연맹(IMU) 회장도 최초의 여성 회장이다. 주최자, 시상자, 수상자 모두 여성인 진풍경이었다.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수학 업적을 평가하고 다양한 수학적 토론 및 강연이 열리는 수학인들의 축제 2014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다.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첫 개최된 이래 이 대회는 1936년부터 4년마다 두각을 나타낸 40세 이하 젊은 수학자들에게 수학계 최고 권위의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여한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은 개막 전까지 비공개라 관심을 모은다. 올해 수상자 4명 중에 마리암 미르자카니(37·이란) 박사가 여성 수학자 최초로 수상했다. 이밖에 브라질 출신 아르투르 아빌라(35), 인도 출신 만줄 바르가바(40), 오스트리아 출신 마틴 헤어러(38) 박사도 필즈상을 수상했다. 아빌라 박사 역시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배출한 수학자다. 이번 서울 대회는 일본(1990), 중국(2002), 인도(2010)에 이어 아시아 국가에서 4번째 개최된 대회이며, 지금까지 56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있었지만 여성이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수상식은 여성 수상자 배출뿐만 아니라 시상자, 주최자 모두 여성이란 데 의미가 있다. 대회를 주최한 국제수학연맹 회장인 잉그리드 도브시 듀크대 석좌교수도 연맹 최초의 여성 회장이며, 개최국 국가원수로 시상을 위해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도 여성이다. 

미르자카니 박사의 이름이 필즈상 수상자로 소개되자 환호성이 터졌다. 4000여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대회 역사상 첫 여성 필즈상 수상자이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도 축사를 통해 “필즈상 역사상 처음으로 선정된 마리암 미르자카니 박사의 도전과 열정을 축하드린다”고 축하했다.

미르자카니 박사는 수학계에선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학자다. 197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와 학부까지 이란에서 공부했으며, 2004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 교수로 연구하고 있다. 어릴 때 수학국제올림피아에서 완벽에 가까운 답안지를 낸 것으로 수학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

주요 학문적 업적은 리만곡면과 모듈라이 공간에 관한 연구로 다양한 수학 분야들의 연결고리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연구는 당구대에서 움직이는 공이 모든 지점을 칠 수 있는가란 호기심에서 시작, 표면과 기하학 구조와의 추상적인 관계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증명해냈다. 2009년 순수수학 발전 공로로 블루멘털상을 수상했고, 2013년 미국수학회 새터상을 수상했다.

최초 여성 수상자가 탄생한 만큼 취재 열기도 미르자카니 박사에게 집중됐다.

미르자카니 박사는 개막식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매우 큰 영광”이라고 말한 뒤,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게 있다면 집중적으로 한번 파보면 어떨까 한다. 너무 전형적인 말일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미르자카니 박사는 호기심과 자신감을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수학자들은 어린이들처럼 호기심이 많다. ‘왜왜왜’라고 묻는데, 이런 질문들이 수학과 가장 근접해 있다”며 “앞으로 여성들이 더 많이 수학계에 진출할 것이고 더 많은 분들이 이 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수학을 어려워하는 여학생들이 있다면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도 어릴 때 수학을 싫어한 적이 있지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수학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필즈상 등 수상자와 국제수학연맹 회장 및 관계자들의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필즈상 등 수상자와 국제수학연맹 회장 및 관계자들의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첫 여성 수상자 배출은 주최 측 입장에서도 경사였다. 잉그리드 도브시 IMU 회장은 “저 역시 여성이고 수학자로서 너무나도 멋진 소식”이라며 “수학계에서 여성 대표성이 적은 편인데 여성이 필즈상을 수상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잠재성이 무궁무진한 여성들을 수학계로 많이 이끌지 못했었다”며 “하나의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은 “수학에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 정말 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젊은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이라며 “최초의 여성 수상자뿐만 아니라 이공계를 전공한 대통령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수학연맹회장도 최초의 여성 회장이기에 굉장히 의미가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정보과학 등 수학 업적이 있는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네반리나상은 수브하시 코트 뉴욕대 교수, 가우스상은 스탠리 오션 UCLA 교수, 직업·연령과 상관없이 수학적 업적을 기리는 천상은 필립 그리피스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명예교수가 수상했다. 수학 대중화에 공헌한 이에게 수여하는 릴라바티상은 수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아드리안 파엔자 박사에게 돌아갔다.

이날 ICM 개막식은 120여 개국에서 40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오는 21일 폐막식 전까지 수상자 강연은 물론 수학자 출신 펀드매니저 제임스 사이먼스 박사, 먼 친척소수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장이탕 박사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수학 관련 프랑스 영화 상영회, 온라인 수학게임대회 등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