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주체적 여성으로
황혼이혼과 노인 여성의 홀로서기 화두 던져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장소심 역으로 분한 배우 윤여정의 드라마 속 모습. 30년간 집을 떠나있던 남편 강태섭(김영철)을 대신해 강씨 일가의 생계를 책임진 희생적 어머니 상을 연기했다. ⓒKBS2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장소심 역으로 분한 배우 윤여정의 드라마 속 모습. 30년간 집을 떠나있던 남편 강태섭(김영철)을 대신해 강씨 일가의 생계를 책임진 희생적 어머니 상을 연기했다. ⓒKBS2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극본 이경희, 연출 김진원)이 ‘황혼이혼’과 노인 여성의 홀로서기라는 화두를 던지며 지난 8월 10일 종영했다. 실버세대 자기 발견의 가치를 전한 이 드라마는 경주 한 대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보여주며 50부작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참 좋은 시절’은 어머니의 모성애와 희생정신을 아름다움으로만 포장하지 않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극의 중심이 되는 강 씨네 가족의 생계를 30년 간 책임진 이는 배우 윤여정이 분한 어머니 장소심이다. 장소심은 결혼한 지 석달 만에 집을 나간 바람둥이 남편 강태섭(김영철)을 대신해 아픈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자식같은 쌍둥이 시동생을 키우고, 남편의 첩과 혼외자까지 끌어안은 전통적인 희생적 어머니 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극 말미 오랜 방황생활을 마치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 헌신적인 어머니는 돌변한다. 이혼 선언을 한 후 집을 나가 독립한 후 한글학교에 다니며 자신만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내용이 전개된 것.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장소심 역으로 분한 배우 윤여정의 드라마 속 모습.  사진 제공=삼화 네트웍스
KBS2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장소심 역으로 분한 배우 윤여정의 드라마 속 모습. 사진 제공=삼화 네트웍스

“평생 내 행복보다 내 식구들 행복이 먼저고 중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평생 나라는 것 없이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내 생각만 하고 살아보고 싶어. 강태섭이 마누라도 아니고 강쌍호 강쌍식이 형수님도 아니고 그냥 장소심으로 죽기 전에 그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어.”

가족들 앞에서 털어놓은 장소심의 진심은 황혼 이혼을 극구 반대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초등교육 조차 받지 못하고 한 평생 ‘누군가의 사람’으로 살아온 수동적 인생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주체적 선택으로 보상받게 됐다. 더 나아가 노인학교에서 만난 교장선생님과의 로맨스, 뼈가 부러진 전 남편을 위해 사골을 고아 오는 친구같은 새로운 관계 설정은 기존 가족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을 선사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장소심 캐릭터뿐만이 아니었다. 장소심의 남편 강태섭 또한 그녀와의 이혼 후 동생 강쌍호(김광규 분)의 족발집에 취업해 제 밥벌이를 스스로 하게 됐다. 평생 난봉꾼으로 가족의 부양을 내팽개친 채 방탕하게 살아온 그가 장소심이 독립적으로 변하자 함께 성장한 것이다. 

종영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가슴 따듯한 여운이 남는 드라마’ ‘감동적이었다’는 평과 함께 황혼이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일부 ‘황혼이혼 부추기는 막장 드라마’ ‘결국 황혼 이혼으로 남았네’ 등 전통적 가족상에 반하는 모습에 반감을 드러내며,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글도 있었다. 반면 “아직은 황혼이혼에 대해 동의할 순 없지만 장소심이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보면 이해가 된다”(유**) “황혼이혼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이어서 더 몰입해서 봤다”(조**) “늦었지만 자신만의 인생을 느껴보라고 놔주고 싶다. 얽매여 있는 인생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데 막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박**) 등의 긍정적 의견이 올라왔다.

 

남편 강태섭(김영철)과 이혼하고 독립해 노인학교에 나가 맨 앞줄 가운데서 열성적으로 한글을 배우는 장소심(윤여정)의 모습. 사진=KBS2 방송 화면 캡처.
남편 강태섭(김영철)과 이혼하고 독립해 노인학교에 나가 맨 앞줄 가운데서 열성적으로 한글을 배우는 장소심(윤여정)의 모습. 사진=KBS2 방송 화면 캡처.

전문가들은 드라마에서 장소심 캐릭터를 통해 ‘황혼이혼’ 이슈를 끄집어내고, 여성의 주체적 삶을 그린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장소심 캐릭터는 모성애 캐릭터다. 가족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힘겨운 상황도 다 수용하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이런 희생적 캐릭터가 마지막에 가서 ‘이제 나도 내 살길 가겠다’라며 이혼을 선택한 부분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고 평했다.

장 평론가는 “현실에서도 황혼이혼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얼마나 더 살겠냐 그냥 같이살지’라는 정서였다면, 이젠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사는 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진 시대”라며 “개인의 능동적 선택을 마냥 단순하게만 또는 부정적으로 봐선 안된다”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누구의 엄마, 아내 역할에 파묻혀 자아를 돌보지 못한 채 살아온 여성들이 나이가 들어 독립적으로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배우 김혜자(김한자 역)가 비슷한 이유로 독립을 선언했는데 앞으로 안방극장에 이런 내용이 많이 다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다만 여태 희생하고 굳이 나이가 들어 말년에 와서야 그런 선택(황혼 이혼)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 엄마는 엄마이고 아내일 뿐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모성신화가 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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