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에 엄마들 분노…“억장이 무너진다”
“장병들을 도구로 생각하는 사고부터 바꿔야"

 

지난달 31일 오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 현안 브리핑 중 일부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달 31일 오후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 현안 브리핑 중 일부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진다. 군대 폭력 금지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아들은 군에 보내고 싶지 않다. 그게 법과 도덕을 어기는 일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어미가 자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4월 28사단에서 선임병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 ‘윤 일병 사망사건’을 두고 엄마들의 탄식과 울음이 온라인상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군 내부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

1일 결혼·출산·육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는 윤 일병의 기사를 접한 엄마들의 분노의 글이 빗발쳤다. 전날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28사단 집단구타 사망사건 일지가 공개 됐기 때문이다. 단순 폭행으로 알려졌던 윤 일병의 죽음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따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엄마들의 공분을 산 것.

 

인터넷 카페  ‘레몬테라스’에 올라온 윤 일병 사건 관련 글. ⓒ카페 화면 캡처
인터넷 카페 ‘레몬테라스’에 올라온 윤 일병 사건 관련 글. ⓒ카페 화면 캡처

주부들이 주축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몬테라스’와 ‘맘스홀릭’ 등에서는 윤 일병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해 숨지게 한 이모 병장(26) 등 선임병 4명에게 극형을 구형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는 댓글이 300여개가 달렸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서명운동과 집회에 뛰어드는 요리 동호회 커뮤니티 ‘82쿡(www.82cook.com)’도 마찬가지다. 숨진 윤 일병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가진 엄마들부터 다섯살 난 아들을 둔 엄마까지 모두 ‘내 아이’를 넘어 ‘우리 아들들’을 위해 군인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 여성은 “태교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마음이 심란해 죽겠다”며 “주변을 돌아보면 군생활 하면서 피해를 입은 장병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고, 30대 주부는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가해자와 지휘관 모두 살인죄를 적용해야한다. 윤 병장의 부모가 4개월 넘게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다음 아고라에는 ‘윤 일병의 참혹한 죽음 치가 떨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 하루 만에 1600여개가 댓글이 달렸다. 육군은 1일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기소한 죄목인 상해치사죄가 허용하는 최대 형량(30년)을 구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론 게시판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윤 일병 사건 청원 게시글. ⓒ아고라 캡처 화면
토론 게시판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윤 일병 사건 청원 게시글. ⓒ아고라 캡처 화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번 사건을 가해자 개인만의 잘못이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건에 대한 단순한 분노를 넘어 ‘왕따(집단 따돌림)’등 병영 부조리와 군대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견도 많다. ‘사회적 모성’을 발휘한 엄마들은 △공소장 변경(상해치사→살인죄) △징병제 폐지, 모병제 실시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개선책을 제시했다.

위용섭 국방부 부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부대 내 악습을 뿌리뽑고, 안전하고 행복한 병영이 될 수 있도록 병영선진화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조차 못 믿는 분위기다.

자녀를 군에 보낸 이희옥(46·가명)씨는 “정치 공세를 하는건지 사고를 안타까워 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고 말했고, 대학생 자녀가 있는 김진주(52)씨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병인권을 챙겨야한다. 사건조사도 군지휘계통에서 해결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군 폭력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군 자체적으로 문화와 제도를 바꾸는 인식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군 중사 출신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태스크포스(TF) 를 꾸리고 외부에서 교육 전문가를 데리고 오는 것보다 그 이전에 군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지휘관이 병사 관리 책임을 다해야한다. 사단장과 연대장이 병사들과 밥을 한끼만 같이 먹고, 관심을 가진다면 군 관련 사건은 반 이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 군인만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군은 장병들을 더 이상 도구화 해서는 안 된다. 군 관계자들의 사고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1915년 독일이 도입한 옴부즈맨 성격의 민간 국방감독관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을 추진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가를 믿고 군에 들어온 장병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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