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여가부·복지부 사업 결국 통합
“통합 결정해놓고 협의가 무슨 소용”

 

여성 시각장애인이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열린 제과제빵 요리교실에서 직접 빵을 만들고 있다. 정부가 여성가족부의 여성장애인 사회참여 사업과 보건복지부의 교육지원 사업을 통합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본래 사업 목적의 훼손과 예산  축소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공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시각장애인이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열린 제과제빵 요리교실에서 직접 빵을 만들고 있다. 정부가 여성가족부의 여성장애인 사회참여 사업과 보건복지부의 교육지원 사업을 통합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본래 사업 목적의 훼손과 예산 축소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공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뉴시스·여성신문

정부가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해 유사·중복 사회복지사업의 통·폐합을 결정한 가운데 통합이 결정된 일부 사업은 이름만 비슷할 뿐, 사업 목적과 내용이 달라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사업 통합으로 각 사업의 특수성이 희석되고, 사업의 실효성도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들이 상당하다.

정부는 7월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8차 사회보장위원회를 열고 사회보장제도 조정·연계방안, 신설·변경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추진현황 등을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현행 사회보장제도 중 유사·중복성이 있는 14개 사업에 대한 조정·연계 방안이 마련됐다. 조정 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통일부의 ‘탈북 산모 도우미 지원사업’은 보건복지부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지원’과 유사사업으로 통·폐합된다. ‘성폭력·가정폭력 탈북 여성 쉼터 지원’도 2016년부터 여성가족부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같이 부처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부처별 복지사업이 중복 시행되면서 예산·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문제점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그러나 애초 사업 취지가 다른 사업들을 ‘무늬’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통합한 사례도 있다.

복지부의 ‘여성 장애인 교육지원’ 사업과 여가부의 ‘여성 장애인 사회참여지원’이 대표적이다. 복지부는 지난 6월 여성 장애인 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두 사업을 통합해 여가부에 업무를 이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업이 통합되면 여성 장애인을 위한 각종 교육지원 사업과 여성 장애인 어울림센터의 사회참여 확대 지원 사업의 대상과 내용 등이 합쳐진다. 이 같은 통합 운영 방안에 대해 당사자 단체는 두 사업의 목적과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의 사업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 제약으로 정규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 장애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교육은 한글, 영어회화, 대입검정고시 준비 등 기초학습 교육 중심으로 이뤄진다. 반면, 여가부의 사업은 어울림센터를 통한 여성 장애인 고충 상담과 각종 정보 제공, 교육 지원 등 종합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

여성 장애인 교육지원 사업은 이미 한 차례 사라질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여가부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여성 장애인 교육지원 예산 5억7600만원을 전액 삭감해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여성 장애인 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 결국 증액됐지만, 이번에 또다시 사업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통합이 결정된 것. 이에 당사자 단체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영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는 이번 결정에 대해 “각 사업의 목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 통합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었다”며 “복지부에서는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하는데 이미 다 결정해놓고 무슨 논의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양 부처에서 여성 장애인을 위한다며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도 여성 장애인계의 욕구나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시행했고, 이제 와서는 사업 목적이나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며 여성 장애인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통·폐합을 시도하고 있다”며 “정부는 각 사업이 목적이 다르고, 근거 법령에 따른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사업 통합을 놓고 정부 부처 간에도 통합을 주장하는 쪽과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한상균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과장은 “2016년 통합하는 것으로 하고 여가부, 관련 단체들과 논의해나갈 것”이라며 “교육이 역량 강화나 기초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두 사업을 합쳐서 프로그램을 짜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광윤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서기관은 “이르면 8월 말부터 협의체를 구성해 당사자 단체가 원하는 쪽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합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면 통합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 “부처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 사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더 장려해야 한다”면서 “현재 약 15억원의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어서 사업 통합을 통해 예산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나, 시너지 효과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곽지영 숭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 장애인은 남성 장애인에 비해서도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거나 아예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며 “의무교육인 공교육에서 조차 배제된 여성 장애인을 위한 교육지원이 강화돼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부처별 사업을 통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중 무학인 비율은 22.1%로 남성 장애인(4.4%)의 5배나 많았다. 반면 대졸 이상은 5.9%로, 남성 장애인(16.5%)보다 크게 떨어지는 등 성별 교육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곽 교수는 “여성 장애인 교육지원에 대한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으로 인해 부처를 옮기다 보면 예산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며 “복지부는 장애인에 초점을 맞추고, 여가부는 여성에 초점을 맞춰 보다 차별성 있는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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