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민갑완(오른쪽)과 올케 윤정순. ⓒ민병휘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민갑완(오른쪽)과 올케 윤정순. ⓒ민병휘

민갑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다. 그는 구한말 주 영국공사를 지낸 민영돈의 장녀로, 1907년 3월 14일 그가 열한 살 때 세자비로 간택돼 스무 살 무렵까지 궁중 법도를 익혔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파혼당하고 평생을 수절했다.

지난 7월 10일 지식공작소는 민갑완의 회고록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를 펴냈다. 1962년 출간된 ‘백 년 한’의 내용 중 지명·인명·연도 등의 오류를 바로잡고, 1968년 그가 71세의 나이로 작고하기까지의 과정을 취재해 보완한 내용이 담겼다.  

민갑완은 영친왕의 비(妃)였던 이방자(마사코 공주) 여사보다는 대중에 덜 알려졌다. 책은 어두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그의 인생을 기록했다. 그는 한 번 간택되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왕실의 법도에 따라 평생을 홀로 살길 원했지만, 일제는 그를 다른 사람과 결혼시키기 위해 집요한 공작을 펼쳤다. 이를 견디다 못한 민갑완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광복 후 귀국해서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조용히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책의 맺음말에는 조카 민병휘씨가 회고록 ‘백 년 한’에 남기지 못한 이야기와 구한말과 광복된 대한민국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고모 민갑완의 모습을 생생히 증언한 내용이 담겼다. 병휘씨에 따르면 민갑완은 수준급의 궁중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고, 털실로 귀마개나 양말을 직접 짜서 만들 만큼 솜씨가 좋았다. 병휘씨는 “고모님은 일반 여인들과는 달리 늘 깃 넓은 흰 동정을 단 한복을 항상 정갈하게 입으셨고 남의 나쁜점은 조금도 말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책은 민씨의 일생은 물론 구한말에서 대한제국을 거쳐 광복 이후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다. 세자비 간택 장면과 같은 당시 왕실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도 눈길을 끈다. 책에는 일제를 피해 상하이에 거주했던 민갑완의 사진과 1968년 부산서 거행된 고인의 장례식 사진 등 ‘백 년 한’에는 없는 사진 자료가 최초로 공개돼 있다. 지식공작소. 1만3500원

 

중국 상하이 시절 민갑완(오른쪽에서 둘째)과 동생 민천행(맨 오른쪽) 가족. 민갑완 왼쪽이 올케 윤정순, 앞에 조카 병순. 맨 왼쪽은 중국인 하녀. ⓒ민병휘
중국 상하이 시절 민갑완(오른쪽에서 둘째)과 동생 민천행(맨 오른쪽) 가족. 민갑완 왼쪽이 올케 윤정순, 앞에 조카 병순. 맨 왼쪽은 중국인 하녀. ⓒ민병휘

 

친자식처럼 귀여워하며 키웠던 조카 병순(왼쪽)과 함께 사진을 찍은 민갑완. ⓒ민병휘
친자식처럼 귀여워하며 키웠던 조카 병순(왼쪽)과 함께 사진을 찍은 민갑완. ⓒ민병휘

 

상하이 망명 시절 중국식 평상복 차림의 민갑완. 그는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민병휘
상하이 망명 시절 중국식 평상복 차림의 민갑완. 그는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민병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 / 1만3500원 / 지식공작소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정혼녀 / 1만3500원 / 지식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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